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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작은 정부 vs 큰 정부

[구본영 칼럼] 작은 정부 vs 큰 정부
윤석열 정부 첫 내각이 20일 가까스로 공식 첫걸음을 내디뎠다. 국회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된 지 47일 만에 인준하면서다. 조각 과정에서 허니문 기간도 없이 야당의 거친 공세와 일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으로 혹독한 산고를 치렀다.

윤 대통령은 선거 때 '작지만 효율적 정부'를 천명했다. 이 모토에 걸맞게 출발선의 대통령실은 슬림한 편이다. 문재인 정부의 3실(비서실·정책실·국가안보실)·8수석(정무·국민소통·민정·시민사회·인사·일자리·경제·사회) 체제보다 단출한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구조다.

하지만 윤석열표 '작은 정부'는 아직 불완전체다. 의석수 167석 거야의 반대로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포함한 정부조직법조차 고치지 못하면서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도 베스트11 스쿼드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격이다.

'작은 정부론'은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 등 고전경제학파가 주창했다. 정부 규모를 줄이되 민간의 자율성을 높이는 게 요체다. 신정부의 6대 국정목표 중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가 바로 그런 취지다.

'작은 정부'든 '큰 정부'든 그 자체로 절대 선, 절대 악은 아니다. 시대 상황에 따라 효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 대공황 때 미국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큰 정부'를 택했다.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고 정부 역할을 키우면서다. 반면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1990년대 빌 클린턴 정부는 '작은 정부'로 침체된 미국 경제를 살렸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중 가장 '큰 정부'를 지향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란 슬로건이 그 전조였다. 5년 단임 정권이 새 나라를 건국하려는 오만한 발상이 필연적으로 국가개입지상주의를 불렀다. 소득주도성장론을 내걸고 해마다 슈퍼예산을 짜고도 모자라 추경도 10차례나 편성했다.

물론 문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등 불가피하게 재정지출을 늘려야 할 요인도 있었다. 다만 정부 '기능' 확대보다 '몸집'을 불린 게 더 큰 문제였다. 공무원 수를 무려 10만명 가까이 늘렸으니…. 동·면사무소에 민원인보다 공무원이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결과는 참담했다. 특히 일자리 정책이 그랬다. 청와대 일자리상황판이 당근마켓에 내놔도 안 팔린다는 시중의 농담이 왜 나왔겠나. 혈세를 쏟아부어 공공부문 단기 알바만 양산했을 뿐 양질의 민간 일자리는 되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큰 정부'의 부정적 유산은 이제 새 정부가 뒤집어써야 할 판이다. 당장 국가부채 '천조국'의 멍에를 윤 정부가 짊어지게 됐다. 더욱이 덩치를 키운 관료조직이 기업을 옥죄는 규제만 쏟아낼 경우 경제활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작은 정부론이 방향은 옳다. 국가가 미주알고주알 간섭하기보다 민간의 창의와 역동성을 살리는 게 맞다는 뜻이다.
국회 권력을 틀어쥔 공룡 야당도 이에 관한 한 신정부의 발목을 잡아선 곤란하다. 정부조직법 협상 과정에서 여가부 폐지 등 각론엔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부처를 기능별로 통합하고, 불요불급한 재정지출을 줄이려는 대의 자체를 훼손하진 말아야 한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