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폭등 버티던 착한 식당마져 가격 올려
노량진 컵밥 거리 노점 가격 500원 인상
송해 자주 가던 국밥집 약 10년만에 가격 올려
"식용유, 돼기고기, 치즈가루, 안오른게 없어"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골목에서 고(故) 송해씨가 자주 찾던 것으로 알려진 2000원짜리 국밥집이 2500원으로 가격을 인상했다. /사진=노유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지갑이 얇은 저소득층의 끼니를 담당했던 이른바 '착한식당'이 물가 폭등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 급등한 재료비로 어쩔 수 없이 가격인상을 결정했지만 겨우 손해만 면하고 있다. 더구나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가격을 또다시 올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착한식당의 경우 가격 인상 이후 손님의 발길이 줄고 있다. 송해씨가 가던 국밥집마져 10여년만에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3500원하던 컵밥, 이제는 4000원
13일 방문한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 거리 노점상의 가격은 500원씩 인상돼 있었다. 가파른 물가상승에 견디지 못하고 지난 1월 1일 단체로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격 인상에도 노점상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컵밥 노점상 A씨는 "7~8년 가까이 장사했는데 그동안 컵밥을 3500원에 팔다가 처음으로 500원 올렸다"며 "재료가 전부 60~70%는 올랐고 많이 오른 건 2배는 올랐다. 남는 게 없어서 가게 유지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13년간 컵밥 거리에서 쌀국수를 팔았다는 B씨(71)도 "식용유, 돼지고기, 치즈가루, 숙주, 안 올라간 게 없다"며 "저렴한 가격도 물가 쌀 때뿐이지 인건비도 안 나오는데 어떻게 하냐"고 하소연했다.
고령층이 주로 찾는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의 '착한식당'들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고(故) 송해씨가 자주 찾은 것으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골목의 우거지 해장국집 또한 10년 가까이 유지하던 2000원에서 2500원으로 가격을 올렸다.
가게를 50년 가까이 운영했다는 권영희(78) 전 사장은 "내 집이고 내가 직접 운영해서 집세가 안 나가니까 이 가격으로 해왔다"며 "최근 가게를 넘겨준 동생에게 가격을 올리라고 했다. 인건비도 오르고 재료비도 올라서 2000원에 한다는 건 무리였고 2500원도 버겁다"고 말했다.
■재료비때문에 올랐지만 손님도 줄었다
'착한식당'은 위기는 한차례 가격인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비룟값이 오르고 기후변화로 줄어들 글로벌 농산물 생산량을 고려하면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가격 인상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주머니 사정이 뻔한 저소득층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착한식당 입장에서는 물가의 고공행진에도 추가로 가격을 올릴 수 없다는 점이다. 추가 가격을 인상할 경우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아 장사를 접어야 할 수도 있어서다.
실제 낙원상가 골목에서 3000원짜리 순두부와 콩나물국밥을 팔아온 음식점 또한 약 3년 만에 안주류 가격을 1000원 올렸다가 손님이 줄었다고 한다. 가게 주인의 아들로 7년 정도 일을 도왔다는 이모씨(26)는 "가격을 올린 직후에는 덜 오고 덜 주문했다. 손님 10명이 왔다면 그중 1~2명은 가격을 보고 그대로 나갔다"며 "한 단골은 항상 먹던 메뉴 대신 싼 메뉴를 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노량진 컵밥 노점상 A씨는 "여기는 공무원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싸게 팔아야 하므로 더 올릴 수 없다.
그런데 물가가 지금도 오르고 있어 걱정된다"고 한탄했다.
물가 상승은 '착한식당'뿐만 아니라 요식업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5년째 중국집 대표 김모씨(42)는 "버티고 버티다가 요리메뉴는 가격을 유지하고, 식사메뉴는 1000원씩 올렸는데 손님들도 계산할 때 한마디씩 항의하신다"며 "이제 코로나가 끝나고 매출이 좀 좋아질 줄 알았는데, 재룟값·인건비·배달료 주다 보니 남는 게 없다"고 전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박지영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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