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88만t 생산 27만t 초과
산지 20㎏ 4만4851원 20% 하락
미곡처리장 쌀 저장공간 부족
농민들 정부대책 실패에 분노
지난 8일 오전 11시께 경기 파주시 탄현 벼 건조저장시설에 800kg짜리 쌀 포대가 수십 개 쌓여 있다. 사진=노유정 기자
지난 8일 경기 파주시 탄현 벼 건조저장시설(DSC)에는 성인 남성 어깨 높이의 '800㎏ 쌀 포대'(톤백)가 수십 개 쌓여 있었다. 신동재 파주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상무는 "원래라면 지금 있는 쌀의 절반도 없어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신 상무는 "뒤편에 500t 규모의 곡물저장시설(Silo)도 가득 차 있다"며 "10월에 새로 쌀을 수확해 저장해야 하는데 재고 처분이 안 돼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물가가 치솟았지만 쌀값은 오히려 폭락하고 있다. 지난해 쌀농사가 풍년이어서 전국에 쌀 재고량이 늘어난 탓이 크다. 각 지역 농협들이 쌀을 처분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쌀값을 내리고 있다.
■창고 비우기 위해 '헐값 처분'
12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산지 쌀값 20㎏ 가격은 4만4851원으로 전년(5만5880원) 대비 19.7% 떨어졌다. '풍년의 저주'다.지난해 쌀 생산량은 388만2000t으로 예측수요량 361만t보다 27만t이 초과했다.
생산은 늘었지만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쌀 저장공간이 부족한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미곡처리장에서는 쌀 재고량을 줄이기 위해 가공 후 헐값에 팔고 있다.
대표적으로 파주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종합미곡처리장(RPC) 및 파주시 DSC 6곳 등에서는 현재 쌀 약 1만2000t을 보관하고 있다. 오는 10월에 햅쌀을 새로 수매하기 전 재고 처리를 위해 초과 근무를 하고 있다. 평년 기준 한달에 쌀 2000t가량을 가공해왔던 파주 RPC는 지난달 3000t을 가공처리했다.
신 상무는 "보통 한달에 20일 근무를 한다 치고 하루에 100t가량 가공할 수 있어 보통 한달에 2000t 가공했는데 이번에는 10일 초과근무를 한 거나 마찬가지"라며 "창고를 비우기 위해 이렇게 가공한 쌀을 싼값에 팔아넘기고 있다"고 전했다.
■농민들 "정부가 유통량 조절 실패"
농민들은 정부 대책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시장격리'가 제때 시행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시장격리는 정부가 쌀 일정량을 매입하는 방법으로 쌀 유통량을 조절해 가격을 안정화하는 정책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는 "쌀 생산량이 늘었다는 통계청 발표가 지난 11월 이뤄졌음에도 올해 초까지 시장 격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농민들은 한 해 농사를 지으면서 진 빚을 연말에 갚기 때문에 해를 넘기면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충남 태안에서 20년 가까이 쌀농사를 지어온 은창기씨(44)는 "정부대책의 효과를 기대하며 판매를 조금 미뤘지만 쌀값이 안정되지 않아 결국 2차 격리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한 소득 감소 피해가 크다"고 했다.
은씨는 "지난 2020년에는 쌀값이 비쌌지만 생산량이 적어 소득이 줄었고 지난해에는 생산량은 늘었지만 가격이 떨어져 또다시 소득이 줄었다"며 "정부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해 가격 손해와 보관 관리, 수량 감소 등의 손해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신 상무는 "올해에는 농협에서도 수매 가격을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진 쌀을 이미 수매한 농협이 힘들었다면 오는 10월에는 농민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만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은 "지난 2020년 양곡관리법을 개정할 당시 정부가 생산량이 3% 초과되거나 가격이 5% 떨어지면 자동시장격리를 약속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며 "현재 협회 측에서 수확기 자동 시장 격리 의무화를 골자로 한 법 개정을 국회와 정부에 제안하고 있다"고 전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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