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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후려치다 '빨간줄' 그어진 자영업자들

고시원·미용실·네일샵 등 빈번
보조 명목으로 최저임금도 안줘

서울의 한 고시텔 총무였던 A씨는 온갖 잡무를 도맡았다. 새 입실자에게 방을 안내하고, 보일러 온도 조절이나 고시텔 사용료를 받는 것도 A씨 일이었다. A씨는 2018년 11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약 9개월간 평일에는 하루 3시간씩, 일요일에는 약 7시간가량 일했다. 하지만 A씨 손에 쥐어진 돈은 매월 40만원이었다. 따져보니 시간당 3500~4000여원이었다. 당시 최저임금은 2018년 시간당 7530원, 2019년에는 8350원이었다. A씨를 고용한 고시텔 업주 B씨는 최저임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9620원으로 의결했지만 여전히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업주들이 잇따르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네일샵, 미용실, 고시원, 식당 등의 업종에서 위반 사례가 자주 발생했다. 대부분 업무 보조나 잡무로 평가절하되는 업무에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미용업은 '임금 후려치기'가 잦은 업종으로 불린다. C씨는 2019년 한 미용실에서 샴푸, 염색 보조 등의 일을 하며 시간당 6698원을 받았다. 업주는 당시 최저임금 8350원을 다 쳐주지 않았다. 고용주 D씨는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D씨는 재판 과정에서 "프리랜서 헤어디자이너로 위촉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C씨는 사업장에서 자신의 고객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여태껏 고객의 머리를 직접 잘라본 적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헤어디자이너로 프리랜서 계약을 맺을 만한 업무 경험이 없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사업장 특성상 교육 내지 수련을 병행하는 근로자들에게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지급하게 된 데에 나름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볼 수는 있다"면서도 "D씨는 형식으로 작성한 위촉계약서를 빌미로 C씨가 프리랜서 헤어디자이너라는 억지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D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네일샵에서 일한 E씨도 시간당 8590원이었던 2020년 시간급 2800~5400원 사이의 돈을 받으며 일했다. E씨를 고용한 F씨는 최저임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았다.

최저임금법 위반 사례는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올랐던 2018년부터 늘어나는 추세지만, 처벌은 대부분 벌금형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법상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하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임금의 최저 수준을 정해 강제하는 제도로 1998년 처음 도입됐다. 매해 근로자와 사용자, 공익위원들로 꾸려진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다. 노사는 각각 인상과 동결을 주장하며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보통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인상률이 그해 최저임금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2023년 최저임금은 시급 9620원, 월급으로는 209시간 기준 201만580원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조사한 지난해 기준 비혼단신근로자 실태 생계비 220만5432원과 비교해도 20만원가량 적은 액수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우지혜 법무법인 중앙법률원 변호사는 "최저임금법 위반시 과태료 금액을 높이거나, 최저임금 미달 금액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최저임금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