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식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 그래픽=정기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개 식용을 금지하자는 논의가 지난해 본격화됐지만,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대통령 지시로 '개 식용 문제 논의 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열 차례 넘게 모이고도 아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 4월에서 6월로 한차례 논의 마지노선을 미룬 뒤 이젠 아예 협의 기한을 무기한 연장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개 식용과 도축을 둘러싼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법제화를 둘러싼 찬반 여론은 팽팽하다. '이제는 식용을 금지할 때'라는 주장과 '먹고 안먹고는 자유'라는 반응이 엇갈린다. 육견업계에 실질적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생계와 연결된 문제이므로 법적 중단을 시키려면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 역시 '개 식용 종식'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 40년 묵은 논란이 종지부 찍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물권 관심 높아지며 '개 식용 금지'에 힘 실려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보신탕집. /뉴스1
1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는 최근 개 식용 종식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인식에 공감대만 형성한 채, 논의기구의 활동 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했다.
종식 시기, 종식 이행을 위한 구체적 실행방안 등에 대해서 동물보호단체와 개 사육농가 등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40년 된 논의가 또다시 공전할 가능성이 크다.
개 식용 논란은 88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초 88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자, 해외 동물보호단체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국제행사를 앞두고 정부는 개고기 집을 외곽지역으로 옮기도록 하거나 보신탕을 사철탕, 보양탕 등 유사단어로 바꿔 사용하게 했다. 하지만 이땐 문화적 반발이 컸고, 사회적 논의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개고기 논쟁이 다시 불붙은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당시 정몽준 FIFA 부회장 겸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장에게 월드컵 기간 중 개고기 식용을 포기해야 한다는 서한을 보내 논란이 됐다. 프랑스 여배우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는 '월드컵을 유치하려면 보신탕은 먹지 말라'는 편지를 2002한국월드컵축구유치위원회에 보내기도 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앞두고도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이때도 해외 동물보호단체들이 항의 서한을 보내는 등의 요청이 있었다. 영국에서는 ‘한국 개고기 거래 금지 촉구’ 청원에 10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2020년 이후 개 식용 논란은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과 연관지을 수 있다. 지난해 반려가구는 600만 가구를 넘었고, 1000만명 이상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개 식용 금지에 대한 주장에도 갈수록 힘이 실리고 있다.
"복날엔 보신탕" 옛말…10명 중 9명 "개고기 안 먹겠다"
지난 9일 경기 성남 모란시장에서 개, 고양이 식용 종식을 위한 집회를 진행하는 동물권단체 회원들. /뉴시스
이처럼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면서 개 식용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이 최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개 식용 관련 설문조사를 보면 개 식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93%에 달했다. 앞으로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12.9%에 그쳤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4.6%)는 국민 정서 상 개고기는 '혐오식품'이라고 답했으며, 개 식용이 유지해야 할 우리나라 전통 문화라고 답한 이는 19%에 불과했다.
다만 선호도와 별개로 법으로 개 식용 금지를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도 많다. 같은 조사에서 10명 중 6명은 법제화에 '찬성'했지만, 4명꼴로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법제화 반대 이유로는 먹는 것에 대한 취향은 인간의 기본권리, 개인의 이익추구 법적금지 불가 등이 꼽혔다.
개 식용 관련 종사자들이 주장하는 생존권 문제도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육견단체는 "이미 개를 먹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국민이 먹고 싶은 걸 선택해서 먹을 자유도 있고 식용견을 기를 직업의 자유도 있다"고 주장한다.
끊이지 않는 불법 도축…법제화 둘러싼 찬반 여론 팽팽
18일 오전 불법 개도축 현장이 적발된 대전 유성구의 한 농장에서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 소속 봉사자들이 개 구조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개 식용과 관련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불법 도축과 관련해서는 개선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불법 도축 문제가 발생하는 건, 현재 축산법에서는 개를 가축으로 인정해 대량 사육이 가능하지만, 축산물위생관리법에는 개가 포함돼 있지 않아 개 도살과 유통에 아무런 법적 행위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관련법 간 이런 모순은 식용 개가 아무런 규제 없이 사육·도살되고 위생이 고려되지 않은 채 시장에 유통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동물권 단체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 동물단체 관계자는 "개는 축산법상 가축이라는 이유로 대량 사육이 가능해 철창에 갇힌 채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공장식으로 길러진다"며 "반면 축산물 위생관리법의 규율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아 '허가받은 작업장'에서 도살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전했다.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한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에는 동물 학대와 관련한 내용이 보완됐을 뿐 식용 문제는 담기지 않았다.
앞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2월 '누구든지 개나 고양이를 도살·처리해 식용으로 사용하거나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동물단체들은 초복인 지난 16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식용개는 없다"며 "정부가 하루빨리 개식용 종식을 선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가 미온적 태도를 고수해 올해도 수많은 개들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갈 것"이라며 "사육과 도살, 유통, 판매 전 과정에 걸쳐 위법과 불법을 자행하는 개식용을 끝내기 위해 정부의 엄중한 단속과 처벌, 그리고 조속하고 완전한 종식 입법을 요구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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