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1950년 6월 말~8월 사이 집단 살해돼
강원 영월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도 포함
울산 울주군 청량읍 반정고개에 있는 울산 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관련 집단 살해 장소와 안내판 /사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정근식)는 한국전쟁 당시 울산에서 일어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 누락된 민간인 희생자 60명 대상
20일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열린 제37차 위원회에서 울산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사건과 강원도 영월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울산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은 1950년 6월 말~8월 사이에 울산지역에서 비무장 민간인 60명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 등으로 예비검속돼 군인과 경찰에 의해 1950년 8월께 집단 희생된 사건이다.
국민보도연맹이란 1949년 사상범 전향을 명목으로 결성한 관변 단체이다. 대상자들은 대부분 정부의 강제적·폭력적 행정집행 절차를 거쳐 가입됐다. 애초 좌익 경력자가 주요 가입대상이었으나, 좌익 관련자뿐만 아니라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는 물론 무고한 국민들도 상당수 가입됐다.
예비검속이란 일제강점기에 범죄 방지 명목으로 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 구금하는 것으로, 이를 규정한 법률인 예비검속법에 따른 것이다. 일제는 1941년 식민지 조선에 ‘조선정치범 예비구금령’을 시행한 바 있다.
■ 진실 원하는 유족까지 2차 피해
울산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으로 진실규명된 희생자들의 출신지는 울주군 두서면, 범서읍, 상북면을 비롯하여 온산읍과 서생면을 제외한 울산시 전역에 걸쳐 있다.
희생자들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거나, 좌익에 협조했다는 이유 등으로 군경에 의해 예비검속되어 울산경찰서 또는 각 지서 등에 구금됐다.
예비검속된 사람들은 이후 울산경찰서와 육군 정보국 소속 CIC 울산지구 파견대에 의해 1950년 8월 울산지역의 온양면 운화리 대운산 일대와 청량면 삼정리 반정고개 일대에서 집단 살해됐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20~30대 남성으로 비무장 민간인이었다.
울산지역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은 1960년 ‘울산 원사자(怨死者) 유족회’를 결성해 유해 발굴을 추진하고, 성안동 백양사 인근에 합동묘를 조성했다.
울산 울주군 온양읍 대운산에 있는 울산 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관련 집단살해 장소와 유족들이 걸어 둔 안내 플래카드. 1950년 8월경 국군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 울산지구CIC와 울산경찰서 경찰에 의해 412명의 울산지역 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이 10여 차례에 걸쳐 경남 울산군 온양면 운화리 대운산 골짜기 등에서 집단 총살됐다. /사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 군사정부, 진실 규명 목소리까지 억압
또한 정부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의 진실규명을 촉구하였다.
하지만 1960년 유족회의 활동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전국의 피학살자 유족회 대표들이 ‘혁명재판’에 회부되면서 중지되었으며, 합동묘는 파묘됐다.
유족들은 억울하게 희생된 가족들로 인해 큰 정신적 후유증을 겪어야만 했다. 희생자의 직계가족뿐만 아니라 일가친척에 이르기까지 시험 탈락, 취업 제한, 업무 제한, 출국 제한 등의 연좌제 피해를 받았다. 일부 유족은 ‘관찰보호’ 대상자로 지정돼 국가의 감시를 받았다.진실화해위원회는 군과 경찰이 비무장·무저항 민간인들을 예비검속해 법적 근거와 절차도 없이 살해한 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과 적법절차 원칙,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위령사업 지원방안 등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울산국민보도연맹 사건은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대통령이 국가 차원에서 첫 공식 사과를 했던 계기가 된 사건”이라며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1기 진실화해위원회 때 누락된 피해자들에 대한 진실 규명을 내렸으며 결정 이후 국가에 대한 권고사항이 잘 이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하였다.
■ 1기 진실규명서 희생자 412명 확인
앞서 진행된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1950년 8월경 국군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 울산지구CIC와 울산경찰서 경찰에 의해 412명의 울산지역 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이 10여 차례에 걸쳐 경남 울산군 온양면 운화리 대운산 골짜기 등에서 집단 총살된 사실이 규명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24일 울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서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노 전 대통령은 영상메세지를 통해 “국가를 대표해서 당시 국가권력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무고하게 희생당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아울러 지난날 국가권력의 잘못으로 희생되거나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과 유가족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1949년 8월 대한청년단이 주민 3명을 끌고 가며 집에 불을 질러 타버렸다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내리의 한 장소이다. /사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한편 ‘강원 영월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은 1949년과 1951년에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현 김삿갓면) 내리 주민 6명이 좌익혐의로 대한청년단과 국민방위군에 의해 불법적으로 희생된 사건이다.
조사 결과, 강원 영월군 하동면 내리에서 농사를 짓던 주민 3명은 1949년 8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대한청년단에 의해 좌익 혐의로 끌려가 살해되었다.
또한 1·4후퇴와 공비토벌 등으로 마을이 소란하자 인근 봉화군 물야면으로 피난하여 생활하던 주민 3명은 1951년 3월 국민방위군 제11단 42지대 직속 전투중대에 의해 봉화군 내성면(현 봉화읍) 유곡리로 끌려가 구타를 당하거나 대검(帶劍)으로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희생자들은 농사를 짓던 민간인이었으며 희생자 중에는 60세 이상 노인 2명과 부녀자 1명, 두 살 아이 1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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