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경남 창원 성산구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해 한국형 원자로 APR1400 축소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사진=뉴스1
정부가 20일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 핵연료) 처리기술 개발을 위해 1조4000억원을 투입하는 장기 로드맵을 제시했다. 탈원전 드라이브를 걸었던 문재인 정부가 원전 해체기술에 치중하면서 사실상 손놓았던 프로젝트다. 탈(脫)탈원전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가 안전한 원전 활용의 대전제인 폐기물 대책을 병행하기로 한 것은 올바른 선택으로 평가된다.
지금 세계는 에너지 위기를 맞고 있다. 유가는 치솟고 폭염 속에 전력난을 겪는 중이다. 오죽하면 세계 최강국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유 증산을 간청했겠나. 올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사태를 악화시킨 주요인이다. 러시아가 유럽연합(EU)을 겨냥해 가스를 무기화하려 하자 얼마 전 EU는 친환경 투자기준인 그린 택소노미(녹색 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시켰다. 유럽국 중 탈원전에 앞장섰던 독일조차 러시아의 가스 공급중단 협박에 놀라 원전 수명연장을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대란은 각국의 에너지전환 정책 실패가 누적된 결과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전력의 천문학적 적자와 최근 예고된 단계적 전기요금 인상이 그 징표다. 발전비용 상승을 숨긴 채 강행한 문 정부의 무모한 탈원전 정책이 결국 곪아터진 격이다. 그런 맥락에서 탈원전 정책 폐기는 당연했다.
그러나 핵폐기물 대책 없는 원전 활성화도 가당치 않다. 거칠게 비유해 화장실 없이 냉난방 잘되는 집을 짓는 꼴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원전은 여태껏 대인사고 한 번 없을 정도로 안전성에서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물을 언제까지 원전시설 내에 임시보관할 수도 없고, 그 경우 주민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일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기술 확보 청사진을 내놨다. 방폐물의 운반·저장·부지·처분 4대 핵심분야 343개 기술개발을 재개한다는 것이다. 이는 문 정부가 5년 내내 뒷짐 지고 있었던 과제다. 그사이 미국·스웨덴·핀란드 등이 이 분야 기술개발을 선도해 언필칭 원전강국인 우리나라로선 따라잡아야 할 현안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윤 정부가 이를 위한 장기 연구개발 로드맵(2023~2060년)을 마련했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새 정부는 지난 정부가 중단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는 한편 곧 설계수명이 다하는 고리 2·3호기 등의 계속운전도 검토 중이다. 문제는 이들 원전의 폐기물 저장용량이 머잖아 한계에 도달할 것이란 점이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를 서둘러야 할 이유다.
거듭 강조하지만, 새 정부가 원전 발전비중을 높이는 건 불가피하다.
에너지 안보 확보 차원에서도, 탄소배출 절감을 위해서도 그렇다. 다만 원전 활용도 제고 정책이 지속가능하려면 폐기물 처리를 위한 제도적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 차제에 정부와 여야가 '고준위 방폐물 처리 특별법' 제정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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