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마리오 드라기 총리의 이탈리아 거국 내각이 20일(현지시간) 밤 연정의 지지철회로 사실상 붕괴됐다. 드라기 총리가 이날 의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로이터뉴스1
마리아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의 사퇴가 불가피해졌다. 20일(이하 현지시간) 밤 연정 세력이 총리 지지 의사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연정의 지지로 출범한 거국내각은 사실상 붕괴됐다.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가운데 부채 비중이 가장 높아 이미 국채 수익률이 치솟던 이탈리아가 급격한 정국 혼란으로 빠져들면서 유로존 경제를 다시 뒤흔들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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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국내각 사실상 붕괴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드라기 총리의 거국내각은 이날 밤 지지기반이 무너지며 사실상 붕괴됐다.
총리 신임 여부를 묻는 의회 투표를 앞두고 연정이 발을 뺐다.
마테오 살비니의 우파 '동맹',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포르자 이탈리아', 포퓰리스트 정당 '오성운동'은 이날 밤 신임 투표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드라기가 대중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지철회를 선언했다.
앞서 지난주 사임이 반려됐던 드라기는 연정의 지지철회로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다시 사임서를 제출할 전망이다.
그가 사임하면 조기 총선과 이탈리아 정국 혼란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드라기의 이탈리아 거국 내각은 이날 의회에서 드라기와 연정 세력 간에 험한 말들이 오간 끝에 결국 파국을 맞았다.
드라기는 이 자리에서 연정 세력들이 자신에 대한 지지를 공언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책 어젠다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드라기는 연정에 자신의 개혁을 지지한다고 다시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동맹'을 비롯한 3대 정당은 이 요구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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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경제 좌초하나
드라기는 세계 경제 둔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치솟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인상 예고 등 악재 속에서 이탈리아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사퇴하게 됐다.
향후 정정불안으로 금융시장 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특히 21일 ECB가 10여년만에 금리인상에 나서고, 게다가 인상 폭도 0.5%p에 이르러 8년에 걸친 '마이너스금리' 통화정책 실험이 막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로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이 뛰는 가운데 정국이 혼란에 휩싸이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이탈리아는 정국 혼란으로 인해 유럽연합(EU)의 코로나19 피해 복구 자금도 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460억달러를 지원받았고, 앞으로 수주일에 걸쳐 210억달러를 더 지원받을 예정이었지만 드라기 사임으로 추가 지원은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가 사임하면 지원금 조건인 경제개혁이 후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CB 총재 출신인 드라기는 지난해 2월 팬데믹으로 쑥밭이 된 이탈리아 재건 임무를 맡아 거국 내각을 출범시켰다. 지난해 이탈리아는 6.6%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하며 경제회복에 성공했지만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로존이 에너지 위기에 빠지면서 경제 상황이 다시 어려워지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가 다시 혼란에 빠져들면 유로존 역시 또 다시 채무위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이 문제가 하반기 전세계 주식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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