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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불법현수막…"도시미관 해쳐" 민원에도 철거 어려워

신고된 집회용은 단속배제 대상
시민들 ‘시각적 공해’ 피로 호소
영등포구선 민원 1600건 달해
일부 지자체 일제정비 나섰지만
법령 개선없이 영구정비 힘들어

방치된 불법현수막…"도시미관 해쳐" 민원에도 철거 어려워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는 '차별금지법 반대' 등의 내용이 담긴 시위 현수막 10여개가 걸려있었지만 관련 시위대는 보이지 않았다 사진=박지연 기자
집회에 사용된 후 장기 방치된 길거리 현수막 때문에 서울시 구청들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민원이 들어와도 철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집회용으로 신고된 시위 현수막은 현행법상 단속 배제 대상이다. 신고만 하면 집회가 열리지 않아도 지자체가 현수막을 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일부 지자체가 자체 정비 방안을 마련했지만 법령 개선이 없는 한 영구 정비는 어려운 상황이다.

■'꼼수 현수막' 단속 근거 없어

1일 기자가 찾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인근에는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 10여개가 걸려있었지만 관련 시위는 보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꼼수 현수막'의 사례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해당 현수막들 대부분이 과격한 표현을 담고 있는 탓에 시각적 피로감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여의도 직장인 정모씨(32)는 "비방에 가까운 내용들이 새빨간 색, 큼직한 글씨로 쓰여 있어 볼 때마다 피곤하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김모씨(28)도 "표현의 자유 영역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현수막에 특정 대상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많아서 건전한 공론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꼼수 현수막'이 계속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철거가 어려워서다. 현행법상 지자체가 이를 규제할 근거가 없는 것.

현행 옥외광고물법 제8조에 따라 경찰에 집회 신고된 현수막 등 광고물의 경우 단속 배제 대상에 해당돼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정비대상에서 제외된다. 시위가 열리지 않더라도 집회 신고만 연장하면 현수막을 장기간 내걸 수 있다는 의미다.

인근 주민들의 민원은 잇따르고 있다. 강남구의 경우 올해 상반기 접수한 집회·시위용 현수막 정비요청 관련 민원 건수가 600여건에 이른다. 또 같은 기간 종로구에 접수된 광고물 관련 민원 3500여건 중 250여건이 시위 현수막 철거 요청이었다. 영등포구 역시 시위 현수막 정비 포함 올해 상반기 현수막 관련 민원은 1582건에 달했다.

■"설치 기간 등 법령에 명확히"

일부 지자체는 '꼼수 현수막' 철거를 위한 자체 정비안을 마련했다.

서초구는 지난달 11일 자체 법률 검토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주요 시위 현수막 일제정비 방안을 시행 중이다. 지난달 12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강남역 사거리 주변 등 3개 구역의 현수막 50여개를 철거했다. 그러나 철거 관련 법적 근거가 없어 이러한 시위 현수막의 영구 정비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할 구청은 자체 계도 및 단속을 하고 있지만 적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 한 구청 관계자는 "시위 현수막 민원이 들어오면 관련 부서가 자체 현장 단속을 나가고 있다"며 "실제 집회를 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집회 신고자가 시위 도중에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있어 이를 구분해 일일이 적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법령을 개정해 규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법적 허점을 악용해 걸리는 집회·시위 현수막으로 인해 '시각적 공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다"며 "집회가 열리는 기간에만 한정적으로 현수막을 내걸 수 있도록 설치 기간 등을 법령에 명확히 기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