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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한국 창업가 '일본의 재발견'

[재팬 톡] 한국 창업가 '일본의 재발견'
"한국에 있어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어떤 이득을 주는가." "반일과 친일을 넘어, 서로에게 있어 전략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매우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듯한 질문을 안고 3년 전 도쿄특파원으로 부임했다. 과거사는 매우 복잡한, 후대까지 연결되는 중차대한 문제다. 어느 한 정권이 책임을 지고 정치적으로 결단을 내리려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국민을 납득시킬 이유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법이다.

1980년대 양국을 묶었던 '반공연대'가 허물어진 이후, 또 한국의 일본 경제추격이 시들해진 이후 불행히도 한일 양쪽 모두 '전략적 이유'를 상실했다. 한마디로 서로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이다.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며 장기간 대화가 중단됐던 것도 전략적 가치 상실에 있다고 보인다. 각자의 국익에 있어 절대로 잃어선 안되는 중요한 파트너였다면 그렇게까지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국의 정치가 지루한 논리를 전개하던 지난 3년여 동안 어쩌면 '실마리'를 던져준 것은 일본시장의 가치를 재발견한 한국의 '젊은 기업'들이었을지 모른다. 과거 전통의 대기업들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난공불락'의 시장이 한국 토종 IT기업들에 뚫리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는 거듭된 도전 끝에 라인을 일본과 대만, 태국에서 '국민메신저'로 등극시켰다. 카카오는 만화왕국 일본에서 웹툰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최근엔 2030세대 한국 토종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겁없이 일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일본의 시장 규모는 한국보다 크고, 법과 제도는 안정돼 있다. 콘텐츠 사용에 값을 치러야 한다는 '지불 문화'도 강하다. 혹자는 "2000년대 한류스타들이 일본시장에서 돈을 벌어갈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저작권 보호가 한몫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의 기성세대들이 과거 한국에 대한 잔상에 매달려 있다곤 하나 일본의 젊은층들은 '글로벌화된' 제품에 거부감이 약하다. 서울에서 도쿄는 비행기로 2시간 거리다. 규슈 지역에 위치한 후쿠오카는 고작 1시간20분 거리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문화적 유사성을 갖고 있는 1억2500만명의 안정된 시장을, 바로 옆에 갖는다는 것은 한국에 결코 손해가 되는 일이 아니다.

최근 미국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일본과 한국을 잇따라 저격했다. 저출산으로 인해 두 나라가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향후 30년 뒤 두 나라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한일 경제권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오른손엔 미국, 왼손엔 한국의 손을 쥐고 한·미·일 세 나라가 태평양 국가로 돌진하자는 것이 나의 외교전략이었다.
" 1980년대 일본의 국익을 위해 한국에 적극 다가섰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발언이다.

"오른손에는 미국, 왼손엔 일본을 쥐고 글로벌 시장으로 돌진하는 게 성장전략이다." 40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젊은 기업가들이 '답을 잃은' 정치에 던지는 화두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