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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폭탄돌리기는 이제 그만

[강남시선] 폭탄돌리기는 이제 그만
얼마 전 전기차 충전요금 특례할인이 종료되고 전기요금 인상분이 반영되면서 급속충전 요금이 올랐다. 전기차 오너로서 솔직히 마음 한구석에서 슬그머니 짜증이 올라오는 소식이었다.

요즘 내비게이션에는 주행경로에 있는 주유소의 가격들이 표시되는데, 그야말로 요즘 표현대로 '후덜덜'하다. 요 며칠은 조금 안정되는 듯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남 일대 주요소에 2300~2500원대 가격이 뜨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휘발유 값이 천정부지였지만 한편에서 다소 느긋하게 관망할 수 있었던 것은 전기차 차주들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특권이었다. 그런데 충전요금이 오른다니 오로지 소비자의 입장에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은 전기요금이 싸기로 유명한 나라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을 정의하는 명언이 있는데 바로 '콩보다 싼 두부'라는 표현이다. 두부는 콩을 가공해서 만들었으니 원재료에 제조비용을 들이면 응당 콩보다 비싸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전기는 오히려 원재료보다 싸게 팔리는 희한한 에너지 제품이다.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대단히 싼 편이다. 2019년 기준 산유국인 멕시코를 제외하면 한국이 가장 저렴하다. 일본과 유럽의 전기요금은 한국의 두 배 이상이다.

원료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전기는 지난 10년간 생산원가에 못 미치는 요금이 책정된 사실상 '유일한' 에너지다. 전기를 국민에게 공급하고 있는 한국전력의 엄청난 적자는 당연한 결과다.

역대 모든 정부는 전기료 '정상화'(턱 없이 싼 비정상적인 가격이므로)를 한 번씩들 만지작거렸지만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전기요금 문제는 경제적 관점에서 풀어야 맞는 답이 나오는데 엉뚱하게도 지금까지 이를 정치 공식에 대입해 왔기 때문이다. 지지율과 여론 악화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은 늘 다음 정부의 몫으로 밀렸다.

한전의 적자가 올해는 30조원을 넘을 것이 확실하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석탄 가격이 작년에 비해 280%나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 지경으로 내몰릴 때까지 한전의 요금인상 요청을 묵살해온 이전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전기차 충전요금이 조금 올랐는데도 금방 섭섭해지는 게 국민들 마음이다. 전기료 인상은 당연히 정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처럼 값싼 전기를 계속 쓰도록 해주는 게 과연 국민에게 진짜 이득이 되는 일인지는 다시 따져봐야 할 문제다. 전기를 팔수록 커지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가 폭탄 돌리기 하듯 전기료 정상화를 뒤로 미룬 결과가 한전의 살인적인 적자다.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은 '원가주의'이다. 부디 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정치를 걷어낸 올바른 정책을 기대해 본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국제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