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핵심 공약이었던 ‘더 나은 재건(BBB)’ 예산 일부 확보
야당 반대에도 부통령 캐스팅 보트로 겨우 통과
11월 중간선거 앞둔 바이든, 겨우 체면치레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개인 자택으로 떠나기 전에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A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올해 11월에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가 지난해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대규모 예산안을 축소해 상원의 문턱을 넘겼다. 이로써 지지율 하락에 쫒기는 바이든은 선거 전에 최소한 체면치레에 성공했다.
AP통신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미 상원은 7일(현지시간) 본회의를 열고 4300억달러(약 558조원) 규모의 예산 지출을 담은 ‘물가 상승 감축 법안’을 가결시켰다. 해당 법안에는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기 위해 에너지 안보 및 기후 변화 대응에 3690억달러(약 479조원)를 투자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법안에는 공공 건강보험인 메디케어에서 노인의 본인 부담금을 연간 2000달러로 제한하고, 1300만명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보조금 지급을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치솟는 인슐린 비용을 민간 건강보험에서 매달 35달러로 제한하는 조항은 빠졌다. 바이든 정부는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하고 부자 증세를 실시하여 7400억달러(약 961조원)의 세수를 신규 확보하기로 했다.
앞서 바이든은 2020년 대선 당시에도 부자 증세를 통한 예산 확대를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출범 직후 앞으로 10년간 3조5000억달러(약 4565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미국의 낙후된 사회기반시설을 고치고 교육과 보건 정책을 지원하겠다는 ‘더 나은 재건(BBB)’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공화당에서는 가뜩이나 물가가 오름세를 보이는 마당에 이처럼 대규모로 돈을 풀기 어렵다며 반대했다. 바이든과 민주당은 BBB 계획으로 물가에 고통 받는 소외 계층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항변하며 지속적으로 법안 규모를 줄였지만 공화당을 설득할 수 없었다.
이에 바이든 정부는 BBB에서 경제 관련 예산을 추려 물가 상승 감축 법안이라는 이름을 붙여 의회로 보냈다. 현재 상원은 전체 100석을 공화당과 민주당이 50석씩 양분하고 있다. 상원에서는 대부분 법안 처리 과정에서 최소 60표가 필요하지만 민주당은 ‘예산 조정’ 절차를 꺼내 공화당의 저항을 돌파했다. 예산 조정은 미 상원에서 지출이나 세수, 연방 부채 한도같은 특수 안건의 경우 단순 과반인 51표의 찬성으로 가결되도록 허용하는 입법 절차다. 연간 회계연도에서 딱 1번만 사용할 수 있다.
상원 의원들은 6일부터 밤을 새며 표결을 진행했다. 민주당은 약 36개의 공화당 수정안을 부결시키고 7일 오후 법안 처리에 성공했다. 표결 결과 찬성 50표, 반대 50표가 나왔지만 상원의장을 겸직하는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찬성 51표로 법안이 가결됐다. 하원의 경우 민주당이 우세한 상황이며 AP는 상원을 통과한 이번 법안이 이르면 12일에 하원 역시 무난히 통과한다고 예상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뉴욕주)는 이날 법안을 처리한 뒤 "길고 험난했지만 마침내 도착했다. 상원은 역사를 만들었고, 이 법은 21세기 입법 위업 중 하나로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도 성명을 내고 "오늘 상원 민주당은 특별한 이익을 놓고 미국 가정의 편에 섰다"며 "나는 정부가 미국 가정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대통령에 출마했고 그것이 이 법안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번 법안과 관련해 약 10년 동안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7400억달러 가까이 조달한 다음 4300억달러는 계획한 지출안으로 쓰고 나머지 3100억달러를 연방 정부 적자를 갚는데 쓰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증세와 지출 확대로 미국 가정의 피해가 줄어들고 적자가 줄어 정부의 물가 대책 부담이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 법이 물가 상승 억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 오히려 일자리를 축소하고 성장을 저해할 좌파들의 희망 지출 목록이라고 비난했다.
현지 언론들은 바이든이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공약 이행의 발판을 마련하면서 정치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현재 바이든의 지지율은 37% 수준으로 취임 이후 최저 수준이며 미 국민의 69%는 바이든이 물가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