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적용 최저임금 이의신청' 기자회견을 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최저임금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저임금이 사실상 노사 합의가 아닌 공익위원 주도로 결정되고, 공익위원이 내놓은 최저임금 산출방식도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서 심의·의결된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해 노사 모두 이의제기를 제기했지만 올해도 재심의는 없었다. 최저임금을 다시 결정해달라는 재심의 요청은 지난 35년간 단 한번도 받아 들여진 적이 없다. 이의제기가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의제기, 요식행위 불과" 무용론 대두
연도별 최저임금 추이 및 최저임금 요구안 변화 과정 /그래픽=정기현 기자
8일 정부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5% 오른 시간당 9620원으로 확정해 지난 5일 관보에 고시했다. 고시된 최저임금은 내년 1월1일부터 업종 구분 없이 모든 사업장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앞서 최임위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2.7%에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4.5%를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 2.2%를 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5%)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이의를 제기했지만 재심의는 없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와 소상공인연합회는 반발하고 나섰다.
'국민노동조합 최저임금 헌법소원 대책위원회'는 5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으로부터 아무런 위임도 받지 않은 최저임금 위원들에 의해 사용자를 처벌하는 범죄구성 요건이 결정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최저임금법상 최임위는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각 위원은 고용부 장관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위촉한다. 고용부 장관은 위원회가 의결한 최저임금안에 따라 이를 고시하며, 이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하거나 최저임금을 이유로 기존 임금을 낮춘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의 벌금에 처해진다.
헌법소원의 법률 대리를 맡은 안중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사실상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처벌 기준을 정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회의원이 제정하는 법률로만 처벌받을 수 있다는 죄형법정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공연도 내년 최저임금안에 대한 이의제기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고용부의 답변에 대해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고용부는 답변서에서 "2023년 최저임금 결정안은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격차·생활 수준과 사업주의 지불 능력·경영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고, 의결 과정에 절차상 하자가 없어 이의제기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소공연은 최저임금법 전면개정과 최저임금제도 개선 운동에 돌입할 방침이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제5조 1항 2호의 주휴수당 의무규정 폐지를 비롯해 최저임금법에서 정한 결정기준에 지불능력 명시, 업종 및 규모의 구분적용 연구용역 근거 마련 및 관련 규정 신설, 최저임금법 위반 처벌 규정의 완화 등 법적·제도적 개선 운동에 나설 계획이다.
"공익위원, 노·사·정 모두 추천해야"…법 개정 험로 예상
6월 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9천620원으로 결정됐다. 박준식 위원장(오른쪽)과 근로자 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는 공익위원을 노·사·정이 3명씩 추천하는 등 선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수차례에 걸친 논의가 무색하게 공익위원 안대로 최저임금이 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도 최저임금도 노사가 합의를 이루지 못한채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단일안 9620원에 대한 표결을 통해 결정됐지만 이마저도 반쪽짜리였다. 근로자위원인 민주노총 소속 4명은 반발하며 표결 전 집단 퇴장했다. 사용자위원 9명도 표결 선포 직후 전원 퇴장했다. 결국 표결은 나머지 근로자위원인 한국노총 소속 5명과 공익위원 9명, 기권 처리된 사용자위원 9명을 의결 정족수로 한 상태에서 찬성 12표, 반대 1표, 기권 10표로 가결됐다.
정부 추천을 받은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결정에 있어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셈이다. 이렇다보니 공익위원의 권한은 더욱 강해지고, 막판 공익위원 안대로 최저임금이 결정되면서 노사 모두 반발하는 상황이 해마다 반복되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 10년간 공익위원 안이 표결에 부쳐진 경우는 7번에 달한다.
최저임금의 산출 방식 역시 노사 모두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 5.0%에 대한 산식에 법적인 근거는 없다. 최저임금법 제4조1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근로자 생계비, 유사 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도록 했을 뿐이다. 산출 근거는 매년 바뀌는 모양새다. 공익위원 뜻대로 인상률을 끌고 나갈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이 같은 노사의 외침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법 개정을 위해서는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등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 개편 논의는 지난 2019년에도 추진됐지만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구간을 설정하고, 결정은 노·사·공익위원으로 구성된 '결정위원회'가 하되 공익위원은 국회와 정부가 나눠 추천하는 이원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입법 과정에서 국회가 종료돼 결국 무산됐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하자가 없어서 재심의를 진행하지 않았다"며 "제도 개편도 아직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 최저임금 심의과정에서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정할지 여부 및 방법, 생계비 적용방법 등과 관련한 기초자료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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