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국 주도 반도체협력체 '칩4' 가입을 놓고 중국의 반발이 거세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에도 대만해협 긴장은 여전하다. 최근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 후 해석조차 난해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3불(不) 1한(限)'이 뉴스의 중심이 됐다.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3각 군사동맹 불가라는 '3불'에다 사드 운용을 제한하는 '1한'까지 한국이 약속했다는 중국 측 주장이 논란을 키웠다. 세 가지 사례 모두에는 한국, 미국, 중국 그리고 갈등이 녹아 있다.
중국의 대한국 압박이 빈번해지고 있다. 우리 대중문화와 콘텐츠가 중국에서 역풍을 맞은 게 '한한령'이다. 한복과 김치 등을 중국 것으로 우기는 동북공정도 있다. 이제는 외교, 군사, 첨단산업에까지 중국의 입김이 표출되고 있다. 한국의 '칩4' 가입을 두고 중국은 관영매체를 통해 '상업적 자살'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운운할 정도다.
갈등이 첨예하고 일상화되면 국면은 전환된다. 국가 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중 국교는 1992년 정상화됐다. 양국을 둘러싼 상황은 상호내정불간섭,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중화인민공화국 승인, 한반도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원칙 등 6개 항의 공동성명을 내놨던 30년 전과는 천양지차다. 중국은 미국과 패권을 다툴 정도로 급성장했다. 동북아 지역은 양국 간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빈번한 갈등은 불안과 회피를 부를 수 있지만 한국의 성장은 높은 대중국 의존도가 한몫했다는 분석에 주목한다. 중국은 싫다고 해서 '이사갈 수 없는 이웃'이기도 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한중 회담에서 "화이부동 정신으로 협력하겠다"고 한 언급은 시의적절하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갈등상황에서 빈번하게 언급된다.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화목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원뜻이다. 국가 사이에서는 "공동의 이익은 찾되 차이점은 인정하자"는 정도가 맞다. 한중 관계의 기존 키워드는 '구동존이(求同存異)'였다.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덮어두고,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자는 게 핵심이다. 화이부동은 한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중국과는 분명히 다른 체제라는 점을 명확히 하겠다는 공개적 선언이다.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는 계속될 것이다. 한한령, 동북공정, 3불1한에 이어 또 다른 버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차이나 리스크, 더 나아가 쇼크가 예견된다. 하지만 '탈중국', 무조건적 중국 배제는 안된다. 공동의 이익, 다시 말해 국익 관점에선 패착이다. '칩4' 참여의 경우 중국 배제보다는 공급망 차원에서 협력하면서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외교적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 기술 우위도 유지해야 한다.
중국의 보복 우려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선제적 공포도 금물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상과 전략적 가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국제적 시야에서 한중 관계 '시즌2'에 맞는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지면총괄·부국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