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영원구 /사진=문화재청
[파이낸셜뉴스] 문화재청은 지난 3월 미국 경매를 통해 매입한 ‘일영원구(日影圓球)’를 지난 1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하고, 기존에 열리고 있던 환수문화재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을 통해 19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
‘일영원구’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진 바 없는 희귀 유물로, 국외 반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초 소장자이던 일본 주둔 미군장교의 사망 이후 유족으로부터 유물을 입수한 개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21년 말 해당 유물의 경매 출품 정보를 입수한 이후 면밀한 조사와 문헌 검토 등을 거쳐 지난 3월 미국의 한 경매에서 이 유물을 낙찰 받아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형(球形)의 휴대용 해시계라는 점, 전통 과학기술의 계승·발전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 명문과 낙관을 통해 제작자와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과학사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먼저, 반구의 형태로 태양의 그림자를 통해 시계를 확인하는 영침이 고정되어 있어 오로지 한 지역에서만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해시계 ‘앙부일구’와 달리, ‘일영원구’는 둥근 공 모양인 원구의 형태로 두 개의 반구가 맞물려 각종 장치를 조정하면서, 어느 지역에서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 당시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전문가 검토에 따르면 ‘일영원구’로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림줄로 수평을 맞추고, 나침반으로 방위를 측정하여 북쪽을 향하게 한 후, 위도조절장치를 통해 위도를 조정한 뒤, 횡량에 비추는 태양의 그림자가 홈 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현재의 시간을 알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일영원구 /사진=문화재청
한쪽 반구에는 12지의 명문과 96칸의 세로선으로 시각을 표시하였는데, 이는 하루를 12시 96각(15분)으로 표기한 조선 후기의 시각법을 따른 것이다. 또한 정오 표시 아래에는 둥근 구멍이 있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쪽의 반구를 움직이면, 이 창에 12지의 시간 표시가 나타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국보로 지정된 자격루와 혼천시계에서도 12지로 시간을 나타내는 시보 장치를 둔 사실로 미루어보아 조선의 과학기술을 계승하는 한편, 외국과의 교류가 증가하던 상황 속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이 고안된 유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원구에 새겨진 선과 명문의 정확한 용도, 구체적인 작동 원리 등 새로운 유물사·과학사적 내용들은 향후 추가 조사와 연구를 통해서 밝혀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영원구’는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 과학유물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한쪽의 반구에는 ‘대조선 개국 499년 경인년 7월 상순에 새로 제작하였다(大朝鮮開國四百九十九年庚寅七月上澣新製)’는 명문과 함께, ‘상직현 인(尙稷鉉印)’이 새겨져 있어, 1890년 7월 상직현이라는 인물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상직현은 고종대 활동한 무관으로 주로 총어영 별장과 별군직 등에 임명되어 국왕의 호위와 궁궐 및 도성의 방어를 담당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유물이 제작된 시기인 조선후기의 주조 기법과 은입사 기법 등의 장식 요소가 더해진 점도 주목된다.
네 개의 꽃잎 형태로 제작된 받침에는 용, 항해 중인 선박 그리고 ‘일월’이 상감되어 있어(사진 7), 향후 금속공예 등 다양한 방면의 연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영원구’는 19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 전시를 통해, 앞서 지난 달 환수되어 공개된 조선 왕실 유물 ‘보록’과 함께 국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며, 추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연구·전시 등에 폭넓게 활용될 예정이다. 이번 환수는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행정 지원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축적된 경험, 관계자 네트워크, 전문가와의 긴밀한 협업을 바탕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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