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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갈등' 부추기는 콘텐츠… 2030에 번지는 '결혼 혐오'

방송·인터넷, 혐오 콘텐츠 남발
경제적 문제서 남녀 갈등 확대
젊은 세대 결혼 가치관 변해

#. "무서워서 어떻게 결혼하겠어요?" 내년 결혼을 앞둔 손모씨(36)는 유튜브를 뒤져보다 이렇게 말했다. 결혼 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부부 갈등을 다룬 영상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손씨는 최근 종영한 인기 프로그램인 '결혼 지옥'의 애청자였다. 그는 "요즘 유튜브 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결혼은 지옥이다' 식의 콘텐츠들이 양산되고 있다"며 "가뜩이나 혼인율이 낮은 시국에 이런 콘텐츠를 남발하는 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젊은 세대들의 '결혼 혐오'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매해 혼인 건수는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에게 결혼에 대한 인식은 점점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 등 경제적인 어려움과 함께 남녀 갈등, 결혼 혐오 등 문화적인 배경에서도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혼인건수 역대 최저

2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2020년 보다 2만1000건(9.8%) 감소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혼인 건수는 지난 2011년 소폭 증가세를 보인 이후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9년에는 23만9000건으로 1971년의 최저 건수를 48년 만에 경신한 데 이어 2020년과 2021년에 잇따라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인구 1000명당 혼인건수를 나타내는 조혼인율도 3.8건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0.4건 줄어, 사상 처음 4건 아래로 내려갔다.

통계청은 혼인 감소 이유로 30대 인구의 감소와 코로나19에 따른 결혼 연기, 국제결혼 감소와 더불어 '미혼 남녀의 결혼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점'을 꼽았다.

실제 미혼 남녀의 결혼에 대한 인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임지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문연구원이 월간 '보건복지포럼' 6월호에 게재한 '성역할 가치관과 결혼 및 자녀에 대한 태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여성이 4.7%, 남성은 12.1%로 집계됐다. 결혼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여성은 35.5%, 남성은 56.3%에 불과했다.

결혼에 대한 태도도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응답에 대해 지난 2015년 3.9%의 미혼 남성만이 동의했지만 지난해에는 6.8%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미혼 여성도 5.7%에서 10.9%로 두 자릿수를 넘었다.

■갈등 콘텐츠가 남녀 혐오 조장

젊은 세대들은 경제적 사정 등 여러가지 이유를 손에 꼽았지만 최근들어 '결혼 혐오' 문화가 거세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모씨(32·여)는 "최근 온라인에서 '퐁퐁남' 논쟁 같은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콘텐츠가 양산되고 있다"며 "결혼 조차 남녀 대결 구도로 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모씨(34)도 "결혼 거부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 같다"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부동산 가격 폭등과 취업 문제 등이 주된 이유였다면 지금은 서로에 대한 거부감도 커진 것도 한 몫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 유튜브 등에 결혼을 검색하면 '웨딩플래너가 본 파혼하게 되는 가장 흔한 이유들' '결혼 상대로는 반드시 걸러야 되는 여자 특징'과 같은 게시물이 검색 상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결혼 문제가 경제적인 문제에서 젠더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단순하게 육아나 보육을 해결하면 혼인율이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남녀가 서로에 대한 기대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어 젠더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