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 마지막 월세입니다", 발굴되지 못한 '세모녀'의 비극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 마지막 월세입니다", 발굴되지 못한 '세모녀'의 비극
숨진 세 모녀가 발견된 수원시 권선구 한 연립주택에 경찰이 설치한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보이고 있다./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지난 21일 수원시 권선구의 한 연립주택에서 60대 여성과 4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옆집 거주자로부터 악취가 난다는 연락을 받은 연립주택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세 모녀가 발견됐다. 당시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었고, 외부인 침입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이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에는 '건강문제와 생활고 등으로 세상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었고, 큰딸도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아버지도 3년 전 사망한 세 모녀는 지난달 집주인에게 '병원비를 이유로 납부가 늦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불과 8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이다. 2014년 2월 세 모녀가 실직과 투병 등으로 생활고를 겪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은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70만원이 담긴 봉투를 남겼다.

2014년 당시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사회복지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며 이른바 '세모녀법'이 국회를 통과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 등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법률이 재·개정됐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 마지막 월세입니다", 발굴되지 못한 '세모녀'의 비극
2022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장애인 종합복지공간 이룸센터 마당 장애인 차별철폐연대 농성장에서 지난 2014년 2월 '죄송하다'는 편지와 함께 월세와 공과금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송파 세 모녀 8주기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사진=뉴시스

■법 개정에도 발굴되지 못한 '세모녀' 주거지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발굴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국의 기존 복지 형태는 신청을 해야만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신청주의'였다. 발굴 관리 시스템은 취약 가구를 지자체가 파악해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단전, 단수 등 각종 공과금 체납 정보가 쌓이면 한국전력, 건강보험공단 등 관련기관들이 지자체에 미납 정보를 넘겨준다. 이른바 '찾아가는 복지'다.

그럼에도 수원 세 모녀는 발굴되지 못했다. 세 모녀는 2020년 초부터 사건이 일어난 주택에 거주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해당 주택에 전입신고가 돼 있지 않아 관할 동행정복지센터에서도 이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만약 복지 관련 기관에서 이들을 발굴했다면 상황에 따라 월 120여만원의 긴급생계지원비나 긴급 의료비 지원 혜택, 주거 지원 등을 제공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 마지막 월세입니다", 발굴되지 못한 '세모녀'의 비극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복지 시스템, 잘 작동하는지도 살펴야"
지난 정부들은 각 주민센터에 사회복지사와 간호사를 배치하는 등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행정 시스템을 정비해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행정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23일 "복지정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그런 주거지를 이전해서 사는 분들을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법 개정을 통해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행정체계를 마련하는 데에서 나아가 현장의 요원들이 체계 안에서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장에는 사명감을 갖고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노력하는 요원도 있지만, 사회복지직에서 시간 때우기식으로 근무하는 요원들도 더러 있다"며 "찾아가는 복지를 위한 행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koreanbae@fnnews.com 배한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