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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유출 속도 심상찮다… 신흥국 '퍼펙트스톰' 공포

환율방어 위해 앞다퉈 달러 매각
신흥국 보유외환 509조원 증발
금융위기 후 감소폭 가장 가팔라
이집트·가나 등 외환위기 위험
스리랑카 이어 연쇄 디폴트 우려

신흥국들의 외환보유액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화 가치가 1달러 밑으로 추락하는 등 미국 달러화 가치가 올들어 급격한 강세를 보이면서 신흥국들이 앞다퉈 환율방어에 나섬에 따라 외환보유액이 급속히 줄고 있다. 외환보유액 탕진으로 인한 신흥국들의 외환위기 도미노 우려까지 나온다.

■신흥국 외환보유 3790억불 감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인용해 신흥국, 개발도상국들의 외환보유액이 올 상반기 3790억달러(약 509조원) 줄었다고 보도했다.

JP모간체이스에 따르면 실상은 더 충격적이라고 WSJ은 전했다. JP모간은 IMF 통계에서 환율 변동성을 제외하고, 중국과 중동 석유수출국들의 대규모 외환보유액을 빼면 신흥국들의 외환보유액 감소폭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가파르다고 지적했다.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은 덩치가 큰 신흥국들은 엄청난 외환보유액을 깔고 앉아 걱정이 없지만 다른 신흥국들은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미 스리랑카는 5월 대외채무 지급을 중단했다. 디폴트다. 에너지를 비롯해 생활필수품들을 수입할 수 있는 달러가 고갈됐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는 자본 통제를 단행했다. 대형 민항사들의 모임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는 외환보유액이 심각하게 줄어들자 중앙은행이 외국 항공사들의 본국 자금송환을 막았다. 4억6400만달러가 현재 나이지리아에 묶여 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들 외에도 파키스탄, 이집트, 튀르키예, 가나 등이 비슷한 외환위기 위험에 놓여 있다고 보고 있다. 외교관계위원회(CFR)의 브래드 세처 선임 연구위원(펠로)은 "비중이 상당한 일부 나라들에 위험이 임박했다"면서 "이들은 애초에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아 두지 못한 나라들"이라고 말했다.

세처 위원은 "외환보유액이 부족한 이들 나라가 국제 금융시장 접근이 차단되면서 식량과 에너지 수입으로 이미 부족한 외환보유액을 파먹고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상황이 훨씬 더 길어질 경우 이들 신흥국이 외환위기 또는 채무위기에 내몰릴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경고했다.

■체코·헝가리 등으로 위험 확산

이번 외환위기 우려는 단골로 거론되는 나라들이 아닌 곳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데이터 제공업체 CEIC에 따르면 동유럽 체코와 헝가리 역시 달러 초강세 흐름과 상품가격 폭등세 속에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줄었다.

체코는 올들어 외환보유액이 15%, 헝가리는 19% 쪼그라들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경제적 충격이 컸고,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가 유럽 가스 공급을 크게 줄이면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충격까지 더해졌다. 올들어 헝가리 포린트 가치는 달러에 대해 30% 가까이 폭락했다.

쥬피터자산운용의 신흥국 채권 부문 책임자 알레한드로 아레발로는 "올해 상당수 신흥국들이 '퍼펙트스톰'에 직면했다"고 우려했다.

신흥국들은 달러가 20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자국 통화가치 추락을 막기 위한 환율방어에 나서 외환보유액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또 신흥국들은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으로 자본이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기둔화 속에서도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유출과 자국 통화가치 추락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상당수 신흥국들은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사실상 막힌 상태여서 다른 돈 나올 구석도 없다.


이집트는 심각한 외환위기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CEIC에 따르면 이집트 외환보유액은 올들어 26% 급감해 6월말 현재 240억달러로 급감했다. 이는 석 달치 수입을 지탱할 수준에 불과하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