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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고르바초프

[fn스트리트] 고르바초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오른쪽)과 부인 라이사 여사. /사진=로이터연합
"우리는 노력했다." 옛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이자 첫 대통령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그가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묘비명으로 삼고 싶은 문구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고향은 남부 러시아의 기막힌 풍광을 자랑하는 캅카스(코카서스) 지역 스타브로폴이다. 여름이면 휴가를 즐기러 온 공산당 간부가 줄을 이었다. 시골 트랙터 기사 출신 청년 고르비(고르바초프의 애칭)는 이들의 휴양지를 예약해 주고 휴식을 돕는 일도 했다. 그렇게 지내며 쌓은 인맥 중 훗날 서기장이 되는 유리 안드로포프도 있었다.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가족애가 인간 고르비의 바탕이었다. "아버지가 전쟁터에 갑자기 끌려가느라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양복을 어머니가 내다 팔아 옥수수를 샀다. 이를 눈치챈 동네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부은 몸으로 대문 앞에 서 있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한동안 끙끙 앓다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줘서 돌려보내셨다(자서전 '선택')."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고르바초프는 "러시아 문학"이라고 답했던 사람이다.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를 보라. 인간의 심성에 대해 그토록 심오한 통찰을 할 수 있다니!" 그는 애초부터 스탈린 같은 비정한 권력자가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대학 댄스파티에서 만난 부인 라이사 여사를 향한 애틋함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첫눈에 반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지역 농업전문가에서 촉망받는 정치인으로, 다시 얼어붙은 제국을 녹여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꿨던 고르바초프가 8월 3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 서구를 향해 선 동구,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해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가 이끈 개혁개방의 결과물이다. 공과를 두고 조국 러시아와 서방세계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그의 서거 소식에 서구 지도자들은 "지칠 줄 모르는 평화 옹호자를 잃었다"며 일제히 애도했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