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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검 경배와 죽음의 질서
세포가 시간에 따라 죽는 것은 순리
암처럼 독단적으로 증식할땐 위험
그 질서가 있기에 생명은 거룩한 것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되어 만물의 영장이라는 위상으로 진화한 기술적 이유로는 두발로 서기, 손을 사용하기, 도구와 불을 이용하기, 조리기구의 발명을 들 수 있다. 그 결과 인류는 환경적 위협 요인으로부터 생명을 보존해 왔고, 영양상태를 크게 개선하여 뇌의 발달을 가져왔다. 나아가 언어와 문자의 발명으로 후속 세대에게 생각과 문화를 전승해 지식의 축적을 이뤘다. 그 결과 사회적 정신적 차원에서의 인지적 행위가 새롭게 부상하면서 여느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꿈을 꾸고 미래를 추구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건은 주검을 매장하는 풍습이다. 어떤 동물들과도 달리 오직 인류만 조상과 동료, 가족과 이웃이 죽으면 시신을 방치하지 않고 매장했다. 매장이라는 의례를 통해 인류는 사후세계와 불멸의 세상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왔다.
인류의 꿈과 상상은 현생의 4차원 세계에서 미지의 5차원, 6차원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치를 가져왔다. 시신을 매장하면서 죽음과 연계된 영생을 희구하는 신화를 빚은 인류는 다른 동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면모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죽음에 임하는 태도는 동서양 문화권에서 각각 독특한 양상으로 발전했다.
인과응보의 강제적 비관용적 징벌임을 강조하는 서양의 사후세계와 달리 동양에서는 저승이 필연적이지만은 않은 곳으로 여기고, 현생을 다른 생으로 이행하는 중간 장소라고 인식했다. 심지어 지옥의 나락에 빠지더라도 자신을 구제해주는 지장보살과 같은 존재가 있다고 믿었기에 서양과는 분명하게 차별화되어 왔다. 죽음을 인지하여 발생한 불로장생의 꿈은 인류 발전의 가장 핵심 동력이 되어왔으며, 죽음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차이는 동서양의 문화, 철학, 윤리에 엄청난 차이를 빚었다.
신화적이고 신비적이었던 불멸의 꿈이 최근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죽음 거부를 현실화하는 구체적 노력으로 바뀌어 가면서 인류는 신에 버금가는 만능과 영생을 획득하려는 도전을 벌이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인류의 입장이 전연 다른 차원으로 변화되면서 불멸과 죽음의 관계와 의미에 대하여 숙고하여야 할 때가 됐다. 생명현상에서의 죽음의 의미를 개체 수준과 세포 수준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일반 세포가 일정한 수명을 가지고 있다는 헤이플릭 가설이 발표된 이래 생체도 수명의 한계가 있음은 당연한 진리로 수용되어 왔다. 그러나 과학기술발전에 따라 인위적 조작에 의하여 세포의 불멸화가 성공했다. 유전자, 발암물질, 방사능 등을 처리하여 정상 세포를 임의적으로 영구화하거나 암세포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더욱 일반 세포에 단 네 가지 유전자 전사인자를 이입하면 줄기세포가 만들어지고, 이들은 기본적으로 만능분화능을 가질 뿐 아니라 암 유발 가능성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정상세포를 간단한 실험실적 방법을 통해 불멸화하거나 암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생명과학계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일반 세포는 철저하게 규제를 받아 부여된 특정 공간에서 특정 시간만 살다가 떠나야 한다. 반면 암세포는 무한대로 증식하고 생체 어떤 부위에도 전이하여 생존한다. 암세포는 규제를 받지 않고 주위 상황에 상관없이 독단적으로 생존 증식하기 때문에 결국 개체에 암을 확대하여 생명체 전체를 훼손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만다.
결국 세포 불멸화의 생물학적 대가는 개체의 죽음이라는 엄중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무작정 증식하고 무한정 생존하는 불멸화의 위험성과 폐단은 이미 생명계에 진화적으로 예고되어 있었다. 세포의 경우 불멸을 선택하면 결국 암이라는 엄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방법을 원용하여 수명을 연장하고 노화를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라는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개체의 죽음을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단위세포들의 죽음이 완결되는 순간이지만 세포의 입장에서는 죽음이란 생체 내에서 다반사로 전개되는 일련의 생명현상일 뿐이다. 정상적인 세포의 경우에는 죽음에 대한 갈등이 전혀 없다. 조직과 개체의 발생과정에서 위치와 시간에 따라 죽어야 할 세포는 죽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패턴 운명을 가진 세포들의 죽음을 통해 온전한 기관형성이 이루어지고 생명활동이 유지된다. 시간과 공간의 상황에 맞추어 위상적으로 전개되는 세포의 죽음은 전체로서의 생명체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되며 당위적인 현상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체에게는 기형(畸形)이라는 체벌이 가해진다. 즉 정상세포는 살아가기 위할 뿐 아니라 죽기 위해서도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생체의 프로그램에 따라 일정하게 일어나는 예정사(apoptosis)는 염증도 일으키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구성성분을 환원해 이웃 세포들에게 공급해주면서 조용한 죽음의 길을 가면서 개체의 생존을 추구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세포 죽음의 형태인 괴사(necrosis)는 열, 방사능, 화학물질, 독물 등과 같은 환경적 요인에 의한 예정되지 않은 사고로서 염증을 유발하고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세포들은 죽음 질서를 통하여 암에 걸리지 않고 조직과 기관이 온전한 기능과 형태를 갖추게 궁극적으로 생명이라는 대명제를 완성한다. 생과 사의 배타적 현상이 조화적 균형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생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따라야 하는 죽음의 질서는 생명의 엄숙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인류는 죽음을 특별하게 수용하여 주검경배라는 의례를 만들면서 진화되고 발전하여 만물의 영장이라는 위상을 갖췄다. 이러한 올바른 죽음의 질서와 주검에 대한 경배가 생명을 거룩하게 하는 근간을 이루고 있다.
박상철 전남대 의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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