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반딧불이 체험, 45일간 성료
1만마리 개똥벌레 내뿜는 빛의 향연 '진풍경'
뜨거운 반응, 내년엔 2만마리! 두배 규모로
"우와! 너무 예쁘다!" "엄마, 이것 봐! 빛 벌레야."
반딧불이 1만마리를 태어나 처음 본 아이들은 알고 있는 감탄사를 연신 쏟아냈다. 곧바로 이어지는 질문 세례.
"어떻게 몸에서 전기(빛)가 나와?" "얘들은 뭐 먹고 살아요?" "우리동네에는 왜 없어요?"
"우리 어린이들이 환경을 잘 보호하면 동네에서도 반딧불이를 볼 수 있어요. 앞으로 환경을 보호하겠다고 저랑 약속해요. 약속~"(사육사)
"약속~"(어린이들)
형설지공(螢雪之功). 어두운 밤, 반딧불이와 마당을 덮은 눈 빛으로 공부해 성공했다는 사자성어다. 정말 그 당시 반딧불이의 빛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매일 밤 반딧불이 1만마리를 볼 수 있다는 곳이 있어 가 봤다.
에버랜드 반딧불이 체험에 참가한 가족들이 반딧불이의 생태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에버랜드 '한 여름밤의 반딧불이'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반딧불이의 일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반딧불이 관찰을 위해 강의장의 문과 창은 모두 막혀 있고 길을 찾기 위한 최소한의 조명만 켜져 있다.
반딧불이는 알-애벌레-번데기-성충 순서로 변모한다. 체험용 책상 위에 놓인 수조에서는 수초에 자리잡은 알, 물 안에서 기어 다니는 애벌레, 흙 안에서 변태를 준비 중인 번데기를 볼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 성충 반딧불이가 되기까지 무려 1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불빛을 뽐낼 수 있는 반딧불이 성충은 열흘 고작 남짓만 살 수 있다.
단 열흘의 시간만 주어진 반딧불이는 이슬만 먹고 살며 낮시간 힘을 아꼈다가 어두운 밤이 되면 열심히 빛을 내며 하늘을 지그재그로 어지럽게 난다. 생명이 다 하기 전, 마지막 구애로 짝을 찾기 위해서다.
에버랜드 반딧불이 체험 프로그램을 예약한 관람객들이 교육장 앞에서 줄 지어 대기하고 있다. 사진=김경민 기자
반딧불이 체험장 내 생태 교육을 위한 키트들. 사진=김경민 기자
반딧불이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반딧불이는 몸 속에 있는 루시페린이 루시페라아제에 의해 산화되면서 빛을 낸다. 전등의 경우 대부분의 에너지가 열로 소모되지만 반딧불이는 에너지의 90%를 빛으로 변환시키는 에너지 효율을 가졌다.
강의실의 불을 모두 끄고 반딧불이 수십마리가 들어있는 샤알레를 책 가까이 가져가면 희미하게 책이 눈에 들어온다. 전등 아래서 보는 것과 비교할 순 없지만 분명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옛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
샤알레를 톡톡 건드리면 반딧불이들은 더욱 강한 빛을 발산한다. 장시간 반딧불이 빛으로 책을 본다면 눈은 나빠지겠지만, 깜깜한 공간에서 반딧불이 빛도 쓰임이 있다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었다.
반딧불이 번데기 모습. 사진=김경민 기자
1만마리 반딧불이, 1만개의 光
진짜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다. '한 여름밤의 반딧불이' 체험 프로그램 2부 순서는 반딧불이 1만 마리가 있는 전시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체험자들이 자리를 잡으면 모든 조명이 꺼진다. 어둠이 눈에 익어 갈 때쯤 반딧불이들은 빛을 더 발한다. 밝을 땐 빛을 내지 않은 반딧불이 특성상 완전히 어두워져야 온전한 빛을 낸다. 그 시간엔 빛을 내는 핸드폰도, 사진기도 사용할 수 없다.
1만 마리의 반딧불이가 공간을 가득 메워 내 주변을 밝히면 마치 밤하늘 우주의 별들을 연상시키며 마음에 힐링을 준다. 수천마리의 빛나는 반딧불이가 천천히 자유비행을 하면 환상을 넘어 경이로운 순간이 연출된다. 여기저기서 또 다시 감탄사가 연발한다.
반딧불이 체험 프로그램은 7월 15일부터 8월 28일까지 45일간 진행돼 여름방학을 맞이한 어린이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지금까지 1만7000여명이 방문했고 종료시까지 예약이 매진됐고, N차 방문까지 이어질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유치원생 아들들과 함께 방문한 A씨는 "도심에서만 살아서 아이들이 곤충이라면 질색을 했는데 반딧불이가 알에서부터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마지막 반딧불이 전시장에 가서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며 "이런 생태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자연과 친해질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샤알레에 담긴 반딧불이들이 빛을 내고 있다. 사진=김경민 기자
도시 속 반딧불이야, 너 어디서 왔니
야생 반딧불이 서식지가 거의 남지 않은 지금, 1만 마리의 반딧불이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에버랜드는 어떻게 이 많은 반딧불이를 공수했을까.
한여름 반딧불이를 고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12명의 에버랜드 직원들이 꼬박 1년간 세심히 돌보고 있다. 반딧불이가 짝짓기를 해 수초에 알을 낳으면 이를 넘는 모아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주며 알이 부화될 수 있도록 돕는다.
반딧불이는 1급수에서만 살기 때문에 알이 부화하면 깨끗한 물이 담긴 수조에 먹이인 다슬기와 함께 넣어두고 매일 3~4번씩 청소를 해줘야만 잘 자랄 수 있다.
2~3㎜였던 반딧불이 애벌레는 약 10개월이 지나면 20~30㎜까지 자란다. 이 때 황토와 모래를 섞은 흙으로 옮겨주면 그 속에서 집을 짓고 번데기 모습으로 약 한달을 보낸 뒤 성충 반딧불이로 변태하게 된다.
작은 애벌레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한겨울에도 차가운 수조를 매일같이 깨끗하게 관리하는 일에는 엉청난 노력과 정성없이는 불가능하다.
2011년부터 반딧불이를 키우고 있는 에버랜드 김선진 사육사는 10여년의 노하우를 '정성'이라고 말한다.
"1mm도 안되는 알을 수초에서 하나하나 찾아 정성드려 챙겨주다 보면 성충이 돼 아름다운 불빛을 내뿜는 반딧불이가 됩니다. 그 모습을 오래 볼 수는 없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게 자연의 섭리겠죠. 그 과정을 거쳐야 또 새로운 알들을 낳고 개체수도 점점 많아지겠죠."
에버랜드는 1998년부터 소규모로 반딧불이를 전시했으나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고객들에게 선보였다. 이후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반딧불이를 보고 싶다" "진짜 반딧불이로 글을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등 고객들의 의견을 반영해 전시장을 확대하고 '형설지공 체험', '한해살이 관찰' 등의 프로그램을 추가 운영 중이다.
아이들에게 다시 '개똥벌레'로 돌아가는 날까지
반딧불이의 또 다른 이름은 개똥벌레. 과거 개똥 만큼이나 많아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흔한 곤충이었지만, 이제는 주변에서 보기 힘든 곤충이 됐다. 김 사육사는 반딧불이가 다시 개똥 만큼 흔해지는 날을 소망하고 있다.
"환경오염으로 자연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반딧불이를 직접 보시면서 잠시나마 자연 보호에 대해 생각하실 수 있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반딧불이가 다시 개똥벌레라고 불릴만큼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에버랜드는 뜨거운 고객 반응에 힘입어 내년에는 반딧불이의 수를 두배로 늘여 더 많은 고객들에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통한 동물 사랑, 환경 보호의 메시지 전달 등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도 확대할 방침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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