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인생에서나 허니문은 달콤하다. 신혼여행지 해변의 물보라처럼 금세 사라지지만. 갓 취임한 대통령에게도 대개 밀월기간은 있다. 미국에서도 짧으면 몇 달, 길면 1년까지 야당과 언론이 백악관을 겨냥한 혹독한 비판은 자제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출범 넉 달이 다 되도록 허니문을 못 누리고 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물가점검차 농협 하나로마트를 들렀다. 초록색 '아오리사과'를 집어 들고 "이게 빨개지나?"라고 묻자 교통방송 등 일부 방송들은 기다렸다는 듯 대통령이 세상물정 모른다며 시시덕거렸다. 출연진도 "듣는 사람들 얼굴이 빨개질 지경"(박용진 의원), "대통령이 실수할 수 있지만, 국민들은 밉상이니 즐기는 것"(박지원 전 국정원장)이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아오리도 충분히 익으면 붉게 변한다는 게 팩트체크 결과였다. 원산지 일본에선 빨간 아오리도 흔했다. 윤 대통령이 실언을 한 것도 아닌데 조리돌림을 당한 셈이다. 그것도 한창 기세를 올릴 임기 초반에….
이 같은 '허니문 실종'은 윤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애초 진지전을 벌일 태세였던 극렬 비토층은 논외로 치자. 윤 정부의 실족을 기다리던 이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줘 중도층조차 등 돌리게 한 게 문제였다. 검찰 인맥이나 사적 인연에 치우쳐 실패한 조각 인사가 그랬다. 능력주의를 내세웠지만, '아빠 찬스'로 낙마한 후보자나 5세 취학 등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 역풍으로 사퇴한 장관을 누가 유능하다고 보겠나.
이는 확고한 지역기반과 팬덤이 없는 대통령의 한계일 수도 있다. 대선에서 윤 후보는 48.65% 득표율로 불과 0.73%p 차로 이재명 후보를 제쳤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식 불공정에 질린 유권자들 덕택이었다. 좌파 표퓰리즘에 관한 한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 한술 더 뜰 것 같은 이재명 대신 윤석열을 고른, 비판적 지지였다. 그런 만큼 중도성향 지지자들이 마음을 바꿀 소지도 컸다. 국정 운영상 결정적 실책은 없었는데도 지지율이 한때 20%대로 추락한 배경이다.
윤 대통령도 이런 사정을 헤아려야 했다. 그런데도 출근길 문답에서 정제 안된, 오만하게 비치는 메시지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전 정권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과거엔 (검찰 아닌) 민변 출신으로 도배를 했다"는 등의 언사가 단적인 사례다.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 등 문 정권의 지독한 '편 가르기 정치'와 다른 면모를 기대했던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는 점에서….
이제 온갖 사법 리스크를 안고 ‘이재명호’가 돛을 올렸으니 윤 대통령 지지율도 얼마간 반등할 게다. 하지만 적폐청산, 즉 야당과 전 정권 비리 청소를 통해 얻을 반사적 지지에만 기대선 곤란하다. 문 정권의 실패 경로를 답습하는 꼴이어서다.
윤 대통령이 국정동력을 온전히 되찾는 지름길은 자명하다. 공정과 상식을 앞세운 초심으로 돌아가되 그 잣대를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관저공사 수주, 장신구 대여 등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이런저런 잡음이 그래서 문제다. '조용한 내조'라는 약속대로 이런 구설은 미리 차단해야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의 도덕적 책무)에 투철했던 지도자가 실패한 사례는 없었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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