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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반도체 위기인데 특별법은 국회서 잠자다니

전문가 76% 위기 단계 지적
법안 정기국회 심사서 빠져

[fn사설] 반도체 위기인데 특별법은 국회서 잠자다니
지난 6월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의 '인력양성 진단과 대안 마련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양향자 특위 위원장(앞줄 왼쪽에서 3번째) 등 참석자들이 파이팅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는 국가안보'임을 역설했다. 지당한 말씀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반도체 현실은 어떤가.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처한 징후가 뚜렷하다. 최근 반도체 산업의 하락 사이클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지표들이 이를 말해준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D램, 낸드플래시 메모리 가격이 지난달 2~3개월째 하락세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통계청은 7월 반도체 재고가 1년 전보다 8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월 반도체 수출이 26개월 만에 7.8% 감소했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반도체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한 전문가 조사에 따르면 전문가 대부분(96.7%)이 현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국내 반도체 전문가 10명 중 9명은 반도체 산업이 위기 직전이거나 현재 위기라고 진단했다. 7명은 위기상황이 장기화할 수 있으므로 경쟁국 사이에서 세련된 외교정책과 특단의 제도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응답자의 76.7%가 반도체 산업이 처한 상황을 위기 단계라고 진단했다. 위기상황 직전이라는 응답도 20%였다. 특히 전체 응답자 중 43.4%는 현 상황이 과거 반도체 산업 최대 위기였던 2016년 중국의 메모리 시장 진입이나 2019년 미중 무역분쟁 등과 비교해 더 심각한 것으로 봤다.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로 '칩4' 대응 등 정부의 원활한 외교적 노력(43.3%)을 꼽았다. 이와 함께 인력 양성(30%), 연구개발(R&D) 지원 확대(13.3%), 투자에 대한 세제·금융 지원 확대(10%), 반도체 소재에 대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3.4%) 등을 들었다.

문제는 반도체 위기가 내년에도 지속된다는 점이다. 전문가의 96.6%는 내년에도 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응답자의 3.4%만 올해 안에 리스크가 해소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위기가 내후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58.6%)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내년까지는 24.1%, 내년 상반기까지는 13.9%로 각각 집계돼 리스크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 와중에 반도체 시설투자 시 대규모 세금감면을 해주는 반도체특별법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양향자 의원이 지난달 4일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국민의힘이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추진한 법안이다. 하지만 국회가 7월 15일까지 발의된 법안을 심사법안으로 정했기 때문에 반도체특별법은 심사대상에서 빠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여당 의원들이 해당 법안에 패스트트랙 등 예외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은 이 법안이 다른 민생법안보다 시급하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인 이른바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조세특례제한법 일부 개정안)'의 9월 정기국회 통과가 불발된 것이다. 미국 의회가 자국 이익을 위해 인플레감축법(IRA)을 2주일 만에 신속 처리한 것과 비교된다. 국가안보가 위태한 상황에서 도대체 어느 나라 야당의 구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