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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오르고 품질 떨어져" 제수과일 들고 상인·주부 실랑이 [현장르포]

고물가에 시름깊은 추석
명절 앞둔 서울 광장·경동 전통시장
올 폭우·폭염에 청과물 작황 부진
상인 "채소물량 작년의 65% 수준"
주부들 "차례상 올릴 최상품 없어"
차례상 실제비용도 40만원 육박

"가격 오르고 품질 떨어져" 제수과일 들고 상인·주부 실랑이 [현장르포]
7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는 차례상의 제수를 준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격 오르고 품질 떨어져" 제수과일 들고 상인·주부 실랑이 [현장르포]
7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과일상이 사과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김동규 기자
"대추가 조금 더 컸으면 좋겠는데…더 크고 튼실한 놈으로 찾아줘요."

7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대추를 사고 있는 60대 한모씨는 가게 주인과 실랑이를 벌였다. 한씨는 대추와 고사리, 굴비 등 차례상에 올릴 제수를 마련하기 위해 광장시장을 찾았다. 문안 대표적 '전통시장'답게 품질이 여느 백화점 못지않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씨의 마음은 개운하지 못했다. 그는 "실하고 예쁜 대추를 찾는다고 찾아봤지만 마음에 차는 놈을 찾질 못했다"며 "올해 날씨가 얄궂었기 때문인지 질 좋은 물건을 찾기 어렵다"고 푸념했다.

이날 기자는 서울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광장시장과 경동시장을 방문했다. 추석이 코앞에 다가온 만큼 풍요로운 명절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주부들의 마음은 풍요롭지 못했다. 주부들은 폭우와 폭염 등 기상악화로 작황이 부진해 차례상에 올릴 좋은 청과물을 구하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뚝뚝 떨어진 제수용 청과물 품질

경동시장의 상인들은 사과와 배, 밤 등 제수용 과일들을 한가득 쌓아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배를 판매하는 상인 A씨는 "과육이 단단하고 달다"며 "작황이 안 좋은 상황에서 이 정도 물건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자신이 판매하는 물건에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하지만 시장을 찾은 주부들의 사정은 사뭇 달랐다. 곳곳에서 "다른 것도 줘봐요"와 "차례상에 올릴 놈인데, 이 정도 가지고는 안돼요" 등 보기에 더 이쁜 과일을 찾는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사과를 사러 온 B씨는 "간식으로 먹는 용도라면 이 정도의 품질도 충분하지만, 차례상에 올리는 것인 만큼 색도 더 빨갛고 모양도 더 둥근 녀석으로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과물을 사러 나온 주부들은 하나같이 물건이 제값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곶감을 산 C씨는 "알이 실하지 않은 것 같은데 10개에 1만3000원씩이나 달라고 하더라"면서 차지 않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있었다.

상인들도 곤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 초에 경기 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작황이 좋지 못해 서울 지역에 유통되는 청과물의 품질이 지난해보다 떨어진다는 것이 상인들의 설명이다.

경동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D씨는 "지난달 폭우로 인해 서울 지역에 유통되는 채소들이 실하지 못하다"며 "지금도 쪽파와 배추 등 시장으로 들어오는 물량이 이전의 65% 수준밖에 안 된다"고 걱정했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1~2개월 사이 비가 많이 와 채소와 과일 등의 청과물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김원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원예실장은 "사과와 포도가 전년동기 대비 각 4%와 10%씩 적게 출하되고 있고, 무의 생육도 전년동기 대비 10% 작다"며 "최근 비가 많이 와 과실에 탄저병이 창궐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탄저병이란 과육이 햇볕을 받지 못해 썩어 들어가는 병을 의미한다.

■추석도 피해 갈 수 없는 물가 고공행진

장을 보러 나온 주부들은 하나같이 "물가가 너무 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50대 주부 E씨는 "차례상을 준비하는 데 30만원 정도를 예상했지만, 못해도 10만원은 더 지출해야 할 것 같다"며 "고들빼기를 사러 갔는데 1단에 1만원을 달라고 하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50대 후반 주부 박모씨는 "지난해와 견줘 물건 값은 2배 가까이 뛰었지만 품질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떨어졌다"고 말하면서 "그나마 경동시장이 백화점, 마트보다 값이 싼 편"이라며 웃어넘겼다.


한국물가협회가 대도시 전통시장 8곳을 대상으로 예상한 차례용품 29종의 평균 가격은 27만7940원이다. 특히 채소 가격이 급등했는데, 시금치 1단 가격은 지난해 추석 때보다 23.1% 오른 7080원, 애호박 1개 가격은 24.6% 오른 2580원이었다. 파 1단은 1년 새 12.8% 오른 2730원으로 조사됐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