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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가 ‘신청’하면 승인… 연차사유 명시, 법적 의무 없어 [김병덕의 문답]

스페셜 리포트
연차, 신청하나요 통보하나요
우리나라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하며 연차휴가 도입
사용자의 승인하에 이뤄져… 무조건 승인이 기본원칙
사유 명시 법적 근거 미약…집회참가 목적 허용 판례도
직원들의 쌓이는 휴가, MZ세대와의 조율…기업도 고민

근로자가 ‘신청’하면 승인… 연차사유 명시, 법적 의무 없어 [김병덕의 문답]
근로자가 ‘신청’하면 승인… 연차사유 명시, 법적 의무 없어 [김병덕의 문답]

#.1

나: "다음주 화요일에 연차 좀 쓰겠습니다."

팀장: "뭐하려고"

나: "개인사정입니다."

팀장: "그러니까 개인사정이 뭔지 알아야 승인을 해주지."
#.2

"회사 연차 사유란에 생일파티라고 적는 사람 어떤가요? 차라리 '개인사유로 인해 연차 제출합니다' 이렇게 쓰는 거면 모를까. 요즘 MZ세대들에겐 그게 아닌가 보네요."

휴가는 잘 다녀오셨나요? 두 사례 중 첫번째는 2019년, 두번째는 지난 7월 인터넷을 달궜던 연차 논란입니다. 첫번째 사례의 주인공은 네티즌의 열렬한 지지를, 두번째 사례의 주인공은 맹렬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연차사용이 이슈가 되는 것은 여전히 제도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70년 된 우리나라 연차제도

연차휴가가 제도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1919년 출범한 국제노동기구(ILO)가 꾸준히 협약과 권고를 내놓으면서 국제적으로 통일된 기준이 마련됐고, 유럽을 중심부로 연차제도를 도입하는 국가가 확산됐습니다.

연차제도가 확산된 것은 근로자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이득이라는 점이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ILO는 1935년 보고서에서 '연차휴가를 부여하게 되면 작업능률이 향상되고 결근·상병이 감소해 사용자에게 유리하다'며 도입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목적은 임금삭감 없이 휴가기간을 스스로 결정해 근로자의 여가를 보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일을 일한 근로자의 육체적·정신적 회복을 위해 부여하는 주휴일과는 별개로 휴식이 필요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 연차휴가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당시 월차휴가제도, 생리휴가제도, 산전후휴가제도 등이 함께 도입됐는데 이 골격으로 50여년을 이어오다 2003년 법정근로시간 단축에 맞춰 큰 폭의 조정이 이뤄졌습니다. 월차휴가 폐지, 연차휴가일수 조정, 사용촉진제 도입, 생리휴가 무급화, 보상휴가제 도입 등이 이뤄졌던 것이죠.

현재 연차휴가 제도는 이렇습니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줘야 합니다. 여기에 3년 이상 계속 근로한 경우 2년마다 1일을 추가하는데 총휴가일수는 25일이 한도입니다.

현실에서 논란인 부분은 60조 5항입니다. 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으면서도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고 돼 있기 때문이죠.

■연차휴가 신청이냐, 통보냐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연차는 근로자의 권리여서 원하는 시기에 사용하겠다고 제출하면 된다는 글들이 보입니다. 다만 형태가 신청인지 통보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기준은 명확합니다.

오지연 지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연차는 사용자의 승인하에 이뤄지는 제도"라며 "신청이라는 제도를 취업규칙 등에 두고 승인받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연차사용은 신청이 맞다는 얘기죠. 근로자가 신청하면 무조건 승인하라는 것이 기본원칙입니다.

다만 권리는 보장하되 사용자가 불리한 시기에 연차를 사용할 경우 협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를 '시기변경권'이라고 하는데 적용할 수 있는 범위는 아주 좁습니다. 단순히 다른 근로자의 업무량이 많아진다는 등의 사유로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근로자가 사전에 연차사용을 신청하고 사용자가 이를 승인하는 게 맞는 방식입니다.

기본적으로 사전에 신청해야 하는 연차를 당일에 쓰는 것도 가능할까요. 연차사용 신청시기는 법률에 명시돼 있지 않아 가능은 합니다만 이 부분은 기업마다 취업규칙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L그룹이나 S그룹은 당일 연차사용은 가능하지만 사후에 명확하게 소명하도록 돼 있다고 합니다. 일종의 상호 신의성실의 의무인 것이죠. 갑자기 병원을 가야 한다거나 하는 피치 못할 사정에서만 허용하도록 노사 간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논란의 핵심인 연차사용 사유 제출은 어떨까요.

오 변호사는 "법률상에서는 사용자가 연차사용 사유, 목적까지 판단하도록 돼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연차사유를 명시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집회에 참가하기 위한 연차사용도 허용해야 한다는 판례도 있다고 합니다. 사용목적에 따라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기 때문에 연차사유를 묻는 것은 법률적으로 근거가 미약합니다.

■늘어난 휴가, 기업들의 고민

기업들도 연차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직원들의 연차가 너무 많이 쌓인다는 점입니다.

유재원 변호사/공인노무사(공인노무사회 부회장)은 "초과근로까지 유급휴가로 전환되면서 근로자들의 연차가 넘치는 상황"이라며 "당해 연도에 소진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보상을 해주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일부 공공기관에서 노사갈등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적립된 연차를 비수기에 한꺼번에 소진할 수 있는 제도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기본급 정도를 부여하면서 한달가량은 연차를 사용해 충분히 쉴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입니다.

경제의 주축인 MZ세대에게 민감한 문제인 만큼 관련 기관들은 관심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유 부회장은 "MZ세대는 남들에게 비난받을 것이 아니라면 자기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들에게 연차는 타협점이 아니라 직장 내에서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율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기성세대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기성세대들은 회사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이를 받아들이지만 MZ세대는 여론을 만들어 가려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갭을 좁히기 위한 기구의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유 부회장은 "근로조건의 개선, 노사관계의 미시적 개선을 위해 전문기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