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릴 총대주교와 푸틴 대통령
[파이낸셜뉴스]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 키릴(76) 총대주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군 동원령’을 두둔하고 러시아 청년들에게 참전을 촉구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지난 25일(현지시간)에는 예배 설교에서 전쟁에 참전해 죽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미국의 뉴욕포스트, 우크라이나 매체 유로메이단 프레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키릴 총대주교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예비군 약 30만 명을 소집한다는 내용의 '부분 동원령'을 발동한 뒤부터 예배 도중 참전 촉구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동원령이 내려진 당일 예배 시간에는 "용감하게 (전쟁터로) 가서 병역 의무를 다하라"면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광과 영생을 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설교했다.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역사적으로 한 민족이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해 온 키릴 대주교는 이날 또 “진실된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교하기도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무적(invincible)”이 된다는 것이다.
키릴 총대주교. /사진=러시아 정교회
키릴 대주교는 “전사를 전쟁터에서 도망치게 만들고, 약자가 배신을 저지르게 하고, 형제가 형제를 상대하게 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진실된 믿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파괴한다”고 설교했다.
이어 25일 주일예배 때는 "병역 의무를 수행하다 죽는 것은, 타인을 위한 희생"이라며 "이 희생을 통해 자신의 모든 죄는 씻긴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전역에서 군 동원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종교 지도자가 '신의 뜻'을 빌어 전쟁 옹호 발언을 이어가자 비판적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BBC 모니터링팀의 프란시스 스칼은 소셜미디어(SNS)에 키릴 총대주교 연설 동영상을 올리며 "러시아 정교회는 푸틴의 동원령에 대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라고 일갈했다. 네티즌들은 "키릴 총대주교를 최전방으로 보내 그의 죄를 씻게 해주자"고 비꼬았다.
한편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그가 소속된 러시아 정교회는 3대 기독교 분파(천주교·개신교·동방정교회) 중 하나인 동방정교회의 가장 큰 교파다.
러시아 정교회 신자는 러시아 내에만 약 1억 명에 달한다. 수많은 신도를 중심으로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그가 푸틴 대통령에게 도덕적·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거들어온 것이다.
키릴 총대주교의 노골적인 친(親) 푸틴 행보에 종교인들의 비난도 거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초 “푸틴의 복사(服事·사제 등을 보조하는 평신도)가 돼서는 안 된다”고 키릴 총대주교를 비판했다.
러시아 정교회 산하에 있는 우크라이나 정교회도 지난 5월 "키릴 총대주교의 전쟁에 관련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이탈리아·미국·프랑스·네덜란드 등 정교회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키릴 총대주교에게 크게 반발하고 있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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