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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나와바리' 넓히는 신오쿠보

[재팬 톡] '나와바리' 넓히는 신오쿠보
"여기 상가들은 요즘 자리가 나도 밖에(중개업소) 안 알려요. 이미 장사하겠다고 번호표 받고 줄 선 사람들만 한 트럭이에요. 알음알음 몰래 거래하더라고요."

얼마 전 도쿄 현지에서 거주할 집을 알아보던 중에 중개업소 관계자는 신오쿠보를 지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점점 신주쿠역 쪽으로 상권이 넘어올 정도로 '나와바리'(세력권)가 확장되고 있어요. 도쿄 상권의 중심이 되고 있는 거죠."

과연 그랬다. 거리엔 한국식 핫도그와 호떡 등 길거리 음식을 들고 걷는 이들과 곳곳에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치킨, 닭갈비, 떡볶이는 이미 일본 젊은이들의 대중음식이 된 듯이 보였다. 성업 중인 간장게장 식당을 보고선 '말 다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류숍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주말에는 밀려드는 손님들로 밥 먹을 시간도 없다"며 "짬을 내더라도 모든 식당이 웨이팅(줄서기)을 하기 때문에 거의 빵으로 때운다"고 전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신오쿠보는 역 주변의 한국음식점, 한국 아이돌 관련 잡화매장 몇몇이 있는 한인타운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과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즐비한 거대상권으로 거듭나는 모습이다.

비단 '국뽕'만은 아닌 것이, 데이터로도 그 열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에 따르면 신오쿠보역 이용객은 하루 10만명을 넘어섰다. 인근 히가시신주쿠역의 이용객까지 더하면 1년간 한인타운 방문객은 9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7월 기준 신오쿠보의 한국점포는 634곳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17년 396곳에서 5년 만에 60%나 늘었다. 마이니치신문에서는 "K팝 등의 영향으로 젊은이들의 발길이 하라주쿠에서 신오쿠보로 옮겨졌다"며 자성적인 보도가 나왔다.

과거에는 하라주쿠, 오모테산도 등이 젊은 세대에게 '핫'한 장소였지만 어느새 신오쿠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클라스' 'BTS'로 대변되는 제4차 한류 붐은 코로나19 팬데믹을 타고 번졌다. 하늘길이 끊겨 목적지를 잃은 전국의 K-컬처 소비자들이 신오쿠보를 대안으로 삼아 '돈쭐'(돈으로 혼쭐)을 낸 덕분이다.


그러나 엔데믹 국면에서 이제 신오쿠보는 또 다른 기점을 맞게 됐다. 양국 간 내달 무비자여행이 실시되면 방구석 도한놀이((渡韓ごっこ·한국여행 놀이), 다베아루키(신오쿠보에서 먹으면서 걷기) 문화에도 적잖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본토의 '찐(진짜) 한류' 장사는 열도의 한류 성지 신오쿠보의 악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MZ세대의 핫플레이스로 신주쿠의 상권까지 잡아먹을 것인가. 이번 겨울 신오쿠보는 제5차 한류 붐을 준비하고 있다.

km@fnnews.com 김경민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