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금리를 올려도 나는 놀라지 않겠다. 이날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오히려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놀랄 일이다. 시장은 금리인상, 그것도 큰 폭의 빅스텝(0.5%p)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금리를 올려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물가는 여전히 불안하다. 기름값 급등을 부른 우크라이나 사태는 풀릴 기미가 없다. 한은은 물가안정을 존재이유로 삼는다. 물가를 떨어뜨리는 데는 금리만 한 무기가 없다. 지금 한은이 고물가를 방치하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한국과 미국 간 금리 격차(0.75%p)도 이 총재를 조바심 나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 경제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 그런 나라가 금리마저 높으니 너도나도 달러만 찾는다. 달러 앞에 '킹' 수식어가 붙은 이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속 자이언트스텝을 밟으면 간격은 더 벌어질 수 있다. 한국은 어정쩡한 선진국이다. 금리차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국은 아직 외환위기 때 겪은 달러 고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총재에게 신중한 행보를 당부한다. 물가에 집착한 나머지 금리를 급하게 올리다 자칫 더 큰 가치를 훼손할 수 있어서다. 이른바 오버슈팅이다. 가계빚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다. 가계빚은 부동산에 물려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8%를 넘보는 수준까지 올랐다. 영끌로 집을 산 이들은 허리가 휠 지경이다. 만에 하나 집값마저 뚝뚝 떨어지면 돈을 빌려준 은행 등 금융권도 안심할 수 없다.
얼마 전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성급한 금리인상이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위기보다 더 큰 해를 세계 경제에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성명을 냈다. 성명은 "침체를 부르지 않고 금리인상으로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믿음은 무모한 도박(imprudent gamble)"이라고 말했다.
연준 의장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한다. 글로벌 경제대통령이란 별칭이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연준 의장은 오로지 '미국 중앙은행 총재'로서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연준이 펴는 정책이 세계 경제에 어떤 파장을 부를지는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제롬 파월 현 의장은 원조 인플레이션 파이터인 폴 볼커 전 의장이 롤 모델이다. 파월은 '끈기(Keeping at it)'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볼커의 회고록 제목이 바로 '끈기'다. 볼커 전 의장은 40년 전 오일파동 때 미국 물가가 두자릿수로 뛰자 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렸다. 그게 미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봤다. 지금 파월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우리도 한국 경제에 가장 적합한 금리정책을 펴는 게 상책이다. 재차 말하지만 나는 한은이 금리를 추가로 올려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오로지 물가만 보거나 미국 금리에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우진 않았으면 한다.
중앙은행은 두루 살펴야 한다. 서강대 이상근 교수는 최근 '추가 금리인상이 최선인가'라는 제목의 본지 칼럼(2022년 10월 7일자)에서 "추가적 금리인상은 뱀이 늘 가난한 자의 맨발을 먼저 무는 것과 같이 서민과 중소기업만 죽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와 금통위원들이 12일 금리 결정 전에 숙고해야 할 고언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고문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