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금성천 전투 ‘참전 영웅’ 최영호 옹
1955년 전역을 앞두고 동료들과 함께한 기념사진. 왼쪽이 최영호 옹. 육군 제공
최영호 옹이 훈장을 걸고 경례를 하고 있다. 육군 제공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한 최영호 옹(89세)은 6·25전쟁을 맞아 1950년 12월 18세의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생에서 군인으로 입대해 포병으로 전장을 누볐다. 당시 그는 용산의 육군포병학교에서 한 달간의 교육 수료 후 육군3사단 제11포병 사격지휘본부에 배속된다.
사격지휘병 임무를 맡고 그의 부대는 1951년 2월 강원도 횡성의 산골짜기에 도착해 얼어붙은 논 위에 포를 설치하고 진지를 구축했다. 이틀 만인 새벽, 인민군 특공대의 기습공격을 받은 첫 전투에서 105㎜ 곡사포를 눕혀서 적을 향해 바로 쏘기도 하면서 궤멸시켰다.
이후 그는 강원도 현리, 양구군 펀치볼 가칠봉 전투 등 크고 작은 전투에 참전했다. 그는 전쟁 중에 설립한 광주 육군포병학교의 '제1기 사격지휘교육과정'에 참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이후 실전에선 부대의 전공에 큰 역할을 한다.
그는 부대 포병 지휘를 맡아 당시 중공군으로부터 '국군 포는 사람 냄새를 맡고 떨어지는 신물'이라는 소문을 들을 정도로 정밀한 포 사격으로 부대의 전과를 올렸다. 숱한 전적을 인정받은 그는 1953년 6월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다.
특히 1953년 7월 화천의 금성천 전투에선 진내 사격도 겪었다. 이 전투 중 퇴각 명령을 받지만 수영을 못하는 그는 장마 때 강폭이 70m인 금성천을 헤엄으로 건너야 하는 생사의 갈림길을 마주했다고 한다.
최옹은 하지만 "'나는 군인이다.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가 우리 부대의 구호이자 내 좌우명였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며 "항쟁해야지. 내가 죽으면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할까 싶어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며 당시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간신히 포탄 케이스를 묶어 양쪽 겨드랑이에 끼우고 강을 건너 살아남았다.
이후 금성지구전투는 중공군 점령 고지를 국군이 차례로 빼앗으며 승전했고 일주일 후 휴전이 됐으며 1955년 2월 일등중사로 전역 후 다복한 삶을 일구어 왔다.
최옹은 "지난번에 7사단 특별강연을 하러 부대에 갔을 때 '단결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호를 하는데, 가슴에 와닿았어요. 내가 금성천을 건넜던 것처럼 후배들도 포기하지 않으면 어떠한 힘든 일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전쟁 중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이 인생을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됐다고 자부한다.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한 노병의 애국심과 책임감은 후배 군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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