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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맥은 짚는 것은 마치 〇〇〇를 켜는 것과 같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한동하의 본초여담] 맥은 짚는 것은 마치 〇〇〇를 켜는 것과 같다
신윤복의 ‘탄현(彈琴)’(거문고 줄을 고르는 여인, 왼쪽)과 동의보감의 '진맥도'

과거 한 약방에는 진맥에 어려움을 느끼는 제자가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제자는 유독 진맥만은 터득하기 어려움이 있었다. 의서를 통해서 진맥법을 읽었지만 자신이 느끼는 맥상이 정확하게 의서에서 말하는 어느 맥상인지 확신할 수 없어 힘들어 했다. 자존심 때문에 진맥이 어렵고 잘 안된다는 것을 말하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제자가 용기를 내어 스승에게 물었다.

“진맥(診脈)의 진수는 어떻게 득해야 합니까? 의서에도 이르기를 맥의 신묘한 이치는 반드시 마음으로 이해해야 하니 말로 전수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맥은 깨닫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는 것입니까?”
스승은 제자의 질문을 받고 의외의 답을 했다.

“만약 깨달음이 있었다면 그 깨달은 바를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말하지 못한다면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거짓된 것이다.”라는 것이다.

스승은 제자에게 말로써 하는 설명만이 아닌 뭔가를 한번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가서 거문고를 켜는 여인을 데리고 오거라.”라고 일렀다.

거문고 켜는 여인이 도착했다. 여인은 ‘행여나 약방에서 거문고를 켤 일이 있을까’하고 의아해하면서도 거문고를 들고 왔다. 여인은 약방에 처음 와보는 터라 이런저런 약초를 구경하느라 돌아다녔다. 그때 스승은 여인 몰래 가지고 온 거문고의 할 줄을 약간 느슨하게 만들어 놓았다.

스승은 제자와 함께 보는 앞에서 대뜸 “이 자리에서 거문고를 한번 켜 줄 수 있겠는가”라고 요청했다.

여인은 자신이야 거문고를 켜는 사람이고 이처럼 치료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라니 더더욱 마다할 것도 없었다. 여인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자연스럽게 거문고 6개의 현(絃)을 한번씩 튕겨 보더니 거문고 줄들을 조금씩 조였다.

바로 그때, 스승이 여인에게 물었다.

“자네는 거문고를 켤 때 그 소리가 평소와 다르면 어떻게 하는가?”라고 물렀다.

여인은 “거문고는 6개의 줄이 있는데, 각 줄은 서로 굵기와 길이와 장력이 달라서 서로 다른 소리를 냅니다. 오래돼서 늘어진 줄이나 끊어진 줄은 바꿔주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줄이 연결된 부들을 당기고 풀어 장력을 조절하기도 하고, 줄을 받치는 안족(雁足)의 위치를 조절하기도 하고, 돌괘를 돌려서 음높이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방금 전에도 한 줄이 약간 느슨해서 돌괘를 돌려서 정상 음높이로 만들었습니다.”
스승은 “그럼 그 줄의 소리가 제대로 난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여인은 “들어서 아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제자가 “들어서 안다는 것은 너무 주관적인 표현이 아닌가요”
여인은 “그럼 어찌 표현해야 합니까? 어릴 적부터 거문고를 켰고, 정확한 소리가 나면 음이 아름답고 소리가 정확하지 않으면 줄을 조절해서 거문고를 켤 때는 항상 동일한 소리가 나게 조절해 왔습니다. 거문고를 켠 지 10여년이 지났는데, 이제는 거문고의 한 줄을 튕기면 그 소리가 좋은 소리인지 나쁜 소리인지 알게 되었고, 줄의 긴장을 풀어야 할지 느슨하게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들어서 알게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제가 듣는 거문고의 한 줄의 소리를 제가 들어도, 제 스승이 들어도, 심지어 제 제자가 들어도 그 한 줄의 소리라고 여긴다면 이것이 어찌 주관적이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여인의 말에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고, 반면에 제자는 마치 자신이 거문고를 켜는 여인보다 못한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스승은 ‘이놈이 무언가를 깨달았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자에게 “너는 27맥 중 현맥(弦脈)은 어떤 맥상이라고 알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제자는 “의서에 기록되기를 현맥은 마치 활의 시위나 거문고 줄을 만지는 듯한 팽팽함이 느껴지는 맥으로 간기(肝氣)가 울결(鬱結)되거나 울화(鬱火)병에서 느껴지는 맥상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스승은 다시 “그럼 너는 혹시 활시위나 거문고 줄을 만져 본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 순간 제자는 ‘아차’ 싶었다. 지금껏 현맥에 관한 내용을 글로만 읽었지 정작 활시위나 거문고 줄을 당겨볼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스승은 “그럼 지금 한번 거문고 줄을 만져 보겠느냐.” 제자는 양반다리를 하고 거문고를 올려 놓았다.

제자는 손가락으로 거문고 줄을 만져 보면서 ‘아~ 이 거문고 줄의 팽팽함이야말로 현맥의 팽팽함이구나’하고 느꼈다.

스승은 “그럼 여인이 보는 앞에서 한번 연주를 해 보거라. 네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면 될 것이 걱정하지 말거라.”라고 안심을 시켰다.

제자는 손가락을 이용해서 튕겨보기도 하고, 술대를 이용해서 튕겨보기도 했다. 나름대로 음의 높낮이가 다른 것을 알고는 자신이 아는 곡조를 비슷하게 흉내 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여인은 소리없이 속으로 키득거렸다. 화음이라고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승은 그 상태에서 제자의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 거문고의 줄을 이리저리 조절해서 장력을 바꿔 놓았다.

“그럼 이제 이 줄들을 원래의 각 줄의 정상적인 장력으로 조현(調絃)해 보거라”라고 했다.

제자는 그래도 나름 자신의 처음 들었던 음을 떠올려 조절해 보았다. 모두 조절을 한 후에 줄을 한번씩 튕켰다. 그러자 여인은 ‘풋~’하고서는 이번에는 소리내서 웃었다. 조현이 전혀 안 되어서 이상한 소리가 난 것이다.

스승은 여인에게 직접 조현을 부탁했다. 여인은 줄을 한두번씩 튕겨보더니 바로 쉽게 조율을 했다.

스승은 여인에게 “어떻게 해서 이렇게 쉽게 조현이 가능하게 되었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여인은 “저는 10여년 전부터 하루 세끼와 잠자는 시간만을 제외하고 거문고만을 켜왔기에 그냥 소리를 듣는데 익숙해졌을 뿐입니다. 어느 날은 하루종일 굶으면서 거문고를 켜는 일들이 있었죠. 거문고를 처음 켜기 시작했을 때에는 모든 줄의 소리가 똑같아 구분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줄을 받히는 안족이 털끝만한 두께만큼만 움직여도 소리가 다르게 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여인의 말을 듣고 있던 제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스승은 제자에게 물었다. “거문고를 켜 보고, 거문고 줄들을 조현해 보니 어떠냐.”
제자는 “거문고 켜는 것이 이처럼 어렵다는 것을 미쳐 몰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문고를 처음 켜보는 것이라 제 연주가 아름답지 못하고 조현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여인처럼 10여년 이상 날마다 쉬지 않고 연주한다면 어찌 불가능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진맥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러자 스승은 “맞다. 너의 진맥도 마찬가지다. 진맥과 연주는 서로 다른 것 같으나 최고의 경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다. 네가 진맥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노력 부족한 것일 뿐이다. 많은 의원들이 왕숙화의 '맥경'이나 이시진의 27맥을 기록한 '빈호맥학'을 암송하고도 진맥에 통달하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진맥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신체의 변화는 모조리 맥에 나타나기 때문에 거문고를 켜듯이 날마다 연구하고 매진한다면 몸에 생긴 병은 결코 도망할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제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는 거문고 때문에 오늘 크게 깨달은 바 있으니 ‘내 어찌 거문고를 켜는 여인만 못할 손가.’라는 다짐을 했다. 진맥은 거문고를 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인생에 있어서 뭐든지 한 가지에 집중하면 도통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의적고> 昔人云 脈可以意會, 不可以言傳. 可言傳者, 跡象也. 中有神理, 必意會而心悟之, 非言辭之所可達. 此其欺我也. 悟得到便說得出, 說不出者, 必其悟不到者也, 豈非其說之誕乎?(옛 사람이 “맥은 마음으로 이해해야 하니 말로 전수해줄 수 없다. 말로 전해줄 수 있는 것은 자취를 남기는 형상이어야 한다. 맥에 있는 신묘한 이치는 반드시 뜻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니 말로 전달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나를 속이는 말이다. 깨달으면 곧 그 깨달은 내용을 말할 수 있거늘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반드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찌 그 말이 속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 의종손익> 弦從中直過指下挺, 狀若弓弦按不移. 弦來端直似絲弦, 緊則如繩左右彈.(현맥은 중간을 곧게 지나가 손가락 아래까지 이르니, 상태가 마치 활시위처럼 팽팽해 세게 눌러도 맥이 움직이지 않는다. 현맥이 올 때는 양끝이 마치 거문고의 줄처럼 곧고 길며 팽팽하기가 마치 좌우 양쪽에서 줄을 당기는 것 같다.)
< 동의보감> 眞肝脉至, 中外急如循刀刃, 責責然如按琴瑟絃.(간의 진장맥이 나타나면 가운데나 겉이 모두 긴급하여 칼날을 어루만지거나 거문고와 비파 줄을 누르는 것과 같이 팽팽하다.
)
< 의문법률> 夫如是者, 是於綱領之中, 而復有大綱領者存焉. 設不能以四診相參, 而欲孟浪任意, 則未有不覆人於反掌間, 此脉道之所以難言, 毫釐不可不辨也.(대체로 이러한 것들은 맥의 요강 중에서도 더욱 중대한 요강으로 존재한다. 만약 사진법을 서로 참고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자기 마음대로 진단하려고 하다가는 잠깐 사이에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것은 진맥의 방법이 설명하기 어려운 까닭이니, 아주 사소한 사항도 잘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