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서울 마포구 지역에서 교통 사각지대를 취재할 일이 있었다. 교통 안내판 표시가 애매해서 대형마트 주차장 출구에서 나오는 애꿎은 운전자들을 불법 유턴하게 만드는 현장이었다.
그런데 악명 높던 그 교통 사각지대에서 경찰들은 반나절에 수십장씩 교통범칙금만 부과하는 모습을 봤다. 경찰들에게 다가가 헛갈리기 쉬운 교통 안내표시를 고쳐서 시민안전 확보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그건 경찰의 업무가 아니라는 거였다. 불편하면 시민들이 직접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을 넣으면 된다고 경찰은 말했다. 경찰의 주 업무는 범죄행위 단속이라는 거였다.
최근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에 대처하는 경찰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찰은 안전 확보보다 불법행위 적발이 우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참사 당일 이태원 지역에 마약 단속 등 불법행위자 적발을 위한 사복경찰을 50명 가까이 배치했다. 나머지 질서유지 경찰이 수십명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참사 수시간 전부터 압사 우려 등 안전사고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11건이나 들어왔지만 경찰은 인파 이동을 원활히 하기 위한 교통통제조차 하지 않았다. 참사 전조현상을 무시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10만명의 군중이 모일 것으로 예상됐던 이태원에서 교통통제만 제대로 했다면, 지하철의 무정차 통과요청만 제대로 했다면, 용산구청이 안전조치를 했다면 수많은 목숨을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만 계속 남는다.
주최 측이 없었기 때문에 관리하지 못했다는 책임회피는 그만해야 한다. 출퇴근시간에 교통체증만 생겨도 경찰이 원활한 흐름을 위해 나선다. 주최 측이 있어서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경찰국 신설과 함께 경찰 고위직 인사권을 쥔 행정안전부 수장의 답변도 실망스럽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발언해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이 장관은 또한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해 다시 논란을 빚었다. 비난이 거세지자 이 장관은 짧은 유감성명을 내는 데 그쳤다. 이번 사태가 '행정 참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적 애도기간에 정쟁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재발을 막기 위해선 책임소재와 원인은 분명히 따져야 한다. 그래야만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제2의 이태원 참사'를 막을 수 있다. 또한 경찰 조직을 장악한 행정안전부는 부처 명칭에 '안전'이라는 단어가 명시된 것을 절대 망각하지 말자. 공권력의 존재 가치는 언제나 국민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전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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