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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112 신고 묵살한 나사풀린 경찰 기강 바로 세워야

11번 위급 신고받고 뭉개
장관, 청장에 책임 물어야

[fn사설] 112 신고 묵살한 나사풀린 경찰 기강 바로 세워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1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현안 보고에 앞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한 경찰의 총체적 부실대응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고가 난 10월 29일 오후 6시34분부터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 신고를 11번이나 했지만 경찰은 이 중 4번만 현장에 출동하고, 나머지는 묵살했다.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해 현장을 통제했더라면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최초 신고는 본격적인 압사가 발생하기 시작한 때보다 3시간41분이나 전이었다. "사람들이 엉켜서 압사당할 것 같다"는 다급한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경찰은 무시했다. 신고자들은 11번의 신고 중에서 6번은 압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또 "대형사고 일보 직전이에요" "넘어지고 다치고 난리예요" 등의 절박한 표현을 쓰며 상황을 알렸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묵살했다.

경찰의 존재 이유에 회의가 든다.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망각한 경찰의 모습을 우리는 난동을 부리는 흉악범을 제압하지 않고 먼저 달아난 사례에서 이미 보았다. 그 사건이 일회성이 아님은 이번 참사를 통해 여실히 밝혀졌다. 경찰조직 전체의 기강 해이, 사명감 상실이자 국가안전망의 붕괴 조짐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젊은 목숨의 안타까운 희생은 경찰의 잘못된 대응에서 비롯됐고, 이는 모두 국가의 책임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여서 국가가 책임이 없다는 정부의 설명은 처음부터 설득력이 없었다. 사람들이 112에 전화를 한 이유가 무엇이겠나. 너나 없이 경찰이 통제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능과 무사안일에 빠진 경찰이 아니었다면 부상자만 몇 생기는 정도로 끝났을 일을 엄청난 인명피해를 내고 말았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0월 31일 이미 녹취록을 듣고도 아무 잘못이 없는 양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사흘이 지난 2일에야 사과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한술 더 떠 "경찰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변명하다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남은 것은 강도 높은 감찰과 엄정한 문책이다. 관련 간부들은 물론이고 장관과 청장에게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치안수뇌부가 자리를 보존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그런 점에서 책임질 자리에 있는 윤 청장이 자체 기구를 만들어 셀프 감찰과 조사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더욱이 이번 문제는 사퇴와 징계 정도의 문책으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지휘계통에 있는 경찰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직무유기죄로 형사처벌을 하는 게 마땅하다. 문제는 검찰 수사권 박탈로 검찰이 이번 참사 책임자들을 수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차제에 범정부적 기구를 만들어서라도 권력의 단맛을 본 경찰의 허물어진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