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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發 ‘돈맥경화’ 전력시장 위기로... ‘회사채’ 묶인 한전, 연료대금 조달 난항

전력도매가 상한제 내달 도입 전망

강원도 레고랜드 개발사업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 사태로 심화된 자금시장 신용경색이 전력시장으로 옮겨붙었다. 신용도가 높은 한국전력의 회사채에 시장 유동성이 쏠리면서 또다른 '돈맥경화'가 발생했고, 이에 정부가 한전 회사채 발행 자제를 요청한 것이다. 올해 연료비 급등으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한 한전이 회사채를 통해 연료대금을 지급해왔다는 점에서 전기요금 추가 인상 등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금시장 블랙홀 된 '한전채'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올 들어 23조5000억원 수준의 한전채를 발행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발행액(10조3200억원)의 2배를 넘는 수준이며, 월별 발행액이 2조~3조원에 이른다. 누적 발행액도 54조원이다. 한전이 이처럼 회사채 발행을 늘린 것은 발전 연료비는 급등했는데 전기요금 인상이 막힌 데 따른 것이다.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한전의 1∼8월 kwh당 전력 구입단가는 144.9원인 데 비해 판매단가는 116.4원에 그쳤다. 1kwh의 전기를 소비자에게 판매할 때마다 28.5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특히 전력 구입단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kwh당 50원 올랐지만 판매단가는 7.9원 오르는 데 그쳤다. 한전이 올해 들어 전기요금을 kwh당 약 20원까지 인상했음에도 손실분을 메우기엔 역부족인 것이다. 이 때문에 한전은 회사채를 발행, 경영 손실액을 막아 왔다.

문제는 레고랜드발 채무불이행(디폴트) 시장 경색이 커지면서 시중 자금이 한전채로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한전채 등 공사채는 최상위 신용등급(AAA)이어서 시중자금이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레고랜드 사태 여파까지 더해져 한전채에 대한 쏠림이 더욱 심화됐다. 자금이 한전채로 쏠리면서 기업들이 줄줄이 회사채 발행에 실패하며 자금조달에 애를 먹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힌 상황이다. 최근 발행한 한전채는 유찰되기까지 했다. 결국 한전은 해외채권 추가발행과 은행차입 확대 등 차원 재원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상태다.

■전기요금의 현실화 절실

한전이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발전사에 전력대금을 지급할 수 없고 전력대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발전사는 해외에서 연료를 구매하지 못하게 된다. 전력시장 붕괴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도매가(SMP) 상한제를 오는 12월부터 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SMP는 한국전력이 발전사에서 전력을 사올 때 적용하는 도매가격으로, 지금처럼 SMP가 치솟을 경우 한전은 발전사에 더 많은 전력비를 지급해야 한다.

산업부는 올 한해만 30조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한전의 재정상황 등을 고려해 SMP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상승할 경우 한시적으로 평시 수준의 정산가격을 적용하도록 하는 'SMP 상한제' 도입을 지난 5월 예고한 바 있다.
다만 민간 발전사들은 SMP 상한제가 반시장적인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입이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기요금이 현실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채 발행을 늘리는 것은 전기요금이 원가를 반영하지 못한 것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단계적 요금인상으로 원가회수율 100%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