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發 고물가’ 스웨덴 현지 취재
치솟는 소비자물가지수, 전기요금 급등이 주원인
시민들 집안 조명 끄고 히터 줄이는 등 절약 안간힘
지역의 시간대별 전기요금 알려주는 앱 사용도 늘어
기업도 심각… 전기요금 미납 체납액 전년比 98%↑
정부, 가정·기업 부담 경감 위한 보상금 지급 검토
지자체도 크리스마스 조명 제한 등 소비 줄이기 나서
스웨덴 스톡홀름 북쪽에 있는 테비센트롬의 한 대형마트에서 스웨덴 소비자들이 세일 품목을 쇼핑하고 있다. 사진=박소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스톡홀름(스웨덴)=박소현 기자】 "나는 하우스(단독주택)에 사는데 9월에 전기요금이 이미 1만 크로나(약 130만원)가 나왔다. 작년보다 3배나 올랐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에릭씨(52)는 "전기요금이 너무 비싸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집이 큰 하우스라서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는 편이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스마트홈 시스템을 사용해서 방마다 온도를 19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고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 조명도 원격으로 다 끈다"고 말했다. 스톡홀름 도심 오덴플란 거리에서 만난 테스씨도 "9월 전기요금이 지난해보다 2배 올랐더라"고 울상을 지었다. 그는 "모든 것이 다 올라서 안 오른 것이 없다"면서 "은행 대출금리도 오르고 아껴도 사는 게 힘들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전역이 고물가에 신음하는 가운데, 유로존에 속하지 않는 스웨덴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웨덴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오르더니 지난 8월에는 같은 기간 9.8%, 지난 9월에는 10.8%로 두 자릿수를 넘어섰다.
특히 9월 전기요금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54% 급등하면서 소비자물가지수를 끌어올렸다. 포근한 가을인데도 급등한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든 스웨덴 사람들은 집안의 조명부터 끄고 실시간 전기요금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참고해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등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스웨덴 스톡홀름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에릭씨가 자신의 집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홈 시스템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주고 있다.
■히터·조명 끈 가정‥ 기업도 '시름'
기자가 지난 3~6일(현지시간) 스톡홀름 시내외의 각 마트와 길거리에서 만난 스웨덴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기요금이 올랐다며 이번 겨울나기를 걱정했다. 우선 스웨덴 사람들은 집 안에 조명을 끄고 히터를 틀지 않는 방식으로 전기요금을 아끼겠다고 말했다. 스톡홀름 오덴플란에 있는 한 슈퍼마켓에서 만난 리사씨(67)는 "9월에 히터를 한 번도 안 틀었는데 지난해보다 전기료가 16% 올라서 올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히터를 틀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폿(SPOT) 등 자기가 살고있는 지역의 전기요금을 시간대별로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를 참고해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식기세척기, 건조기, 히터 등을 사용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기요금은 지역별 전기 생산량(공급량)에 따라 매일 달라지는데 통상 수요가 많은 오후시간대에 전기요금이 높고 새벽시간대는 낮은 편이다. 안네씨(56)는 "요새 스웨덴 사람들이 만나면 항상 전기요금이 테이블에 오른다"면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예전처럼 크리스마스 조명을 사고 집집마다 환하게 밝히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폭등한 전기요금에 비명을 지르는 것은 스웨덴 가정만은 아니다. 스웨덴 기업의 전기요금 미납 부채 문제는 심각하다. 스웨덴 일간지 다겐스 눼헤테르에 따르면 스웨덴 기업의 전기요금 미납 체납액은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9월 25일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98% 증가했다.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스웨덴 대기업 텔리아, H&M 등도 전기요금 미납에 대한 지불 명령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스웨덴 정부 관계자는 "높은 전기요금이 기업에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면서 "9월 한달 기업 파산 건수가 13% 늘었는데 주로 소규모 회사에 파산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슈퍼마켓에 파격 세일 중인 두루마리 휴지가 다 팔려 진열대가 비어 있다.
할인 중인 친환경 식용유가 다 팔려 텅 빈 진열대.
■식품값도 30% '껑충'
스웨덴의 식품 가격도 껑충 뛰면서 가계를 조여오고 있다. 스웨덴 농림부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식품분야의 물가 지수 및 가격 통계'(2022년 8월)에 따르면 스웨덴 농산물 물가지수는 지난 2021년 8월에서 지난 8월까지 28.7% 올랐다. 특히 고기, 우유, 치즈, 빵, 시리얼, 커피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실제 스웨덴 마트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주요 식품 가격을 세 차례 이상 올렸고 연초보다 대다수 식품 가격이 20~30% 올랐다는 것이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주로 할인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식용유, 두루마리 휴지 등 생필품을 파격 세일하는 매대는 텅텅 비어 있었다. 물건을 고르기 전에 가격을 비교하느라 한참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스톡홀름 외곽의 테비센트롬의 한 마트에서 만난 카밀라씨(34)는 "장을 볼 때마다 최대한 아껴 써도 200크로나(약 2만6000원)씩 더 쓰고 있다"면서 "불필요한 계절성 쇼핑을 줄이고 외식이나 야외 활동을 줄였다"고 말했다.
■정부 보상금 검토…소비 줄이는 지자체
스웨덴의 전기요금이 급등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스웨덴은 한국과 달리 전력시장이 단일하지 않고 노르웨이, 핀란드 등 인접한 북유럽 국가는 물론 독일, 영국, 폴란드 등과도 전력시장이 연결돼 있다. 지난해 가을 노르웨이 서부 베르겐과 영국 북동부의 브라이스를 연결하는 해저 고압선이 완공되면서 유럽의 전력가격표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베스터비크시 환경 에너지 공단의 미 세네룻 사업부문 부사장은 "유럽의 노드풀(범유럽전력거래소)이 하나가 되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북유럽의 전기가격이 (더 높은) 유럽에 맞춰지게 됐다"면서 "전력 발전량은 제한적인데 전기 수요가 더 증가하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천연가스,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유럽의 전력난이 심화되면서 그동안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스웨덴 전력시장도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다.
스웨덴 정부는 급등하는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가정뿐 아니라 기업에도 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한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정권을 잡은 보수우파연합이 이번 총선에서 공약한 대로 스웨덴 남부의 전기구역3과 전기구역4에 사는 약 500만명에게 총 550억 크로나(약 7조원)를 제공할 계획이다. 전기 요금이 상승한 만큼 스웨덴 전력회사가 벌어들인 잉여금에서 보상금이 지급된다. 다만 수력발전소가 위치해 전력생산량이 많은 스웨덴 북부의 전기구역1과 전기구역2에는 지원하지 않을 예정이다. 전기구역1과 전기구역4의 전기 가격차는 최대 4배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웨덴 스톡홀름시 등 지방자치단체 16곳은 올해 크리스마스 조명을 제한해서 전기를 절약하기로 결정했다. 스웨덴은 예년이면 하루 20시간 동안 크리스마스 조명을 켰지만 올해는 가로등이 켜져있는 시간으로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30%의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스톡홀름시의 설명이다.
회가네스시도 12월 오후부터 사무실에 촛불 모양의 조명을 밝히기 않기로 했고 지자체 5곳은 수영장 문을 일시적으로 닫거나 수영장 온도를 낮출 계획이다. 올겨울 아이스링크를 열지 않거나 운영시간 제한을 검토하는 지자체도 있고 베스테로스는 연간 전기비용 2배 상승을 앞두고 공공건물의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전기 소비를 줄이는 것이 전기요금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gogosing@fnnews.com 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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