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통근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은 철도 덕분이었다. 짐짝 말고 사람, 그러니까 도시에 일터를 둔 근로자들을 태워 나르는 철도(런던~그리니치 레일웨이)는 1836년 드디어 첫 기적을 울린다. 인류문화사를 주로 다룬 영국 작가 이언 게이틀리의 책 '출퇴근의 역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1세대 통근자는 변호사 등 부유층 전문직이 많았으나 노동계급이 이 대열에 합류하기까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당시 풍경은 그로테스크하다. 매표소는 승차권만 판 것이 아니었다. '레일웨이 패신저스 보험회사'의 생명보험도 함께 팔았다. 철로가 수리를 위해 제거된 상태인지도 모르고 질주하던 열차는 강바닥으로 추락한다. 이 비슷한 사건사고가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던 시절이었다.
20세기 통근자들은 열차보다 이동성 높은 운송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언한 이는 공상과학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다.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진보가 인간의 삶과 사고에 일으키는 반응에 대한 예측(1899년)'이라는 긴 제목의 책에서 그렇게 내다봤다.
웰스의 예언은 금세 현실이 된다. 1908년 출시된 미국 포드자동차 T모델은 1920년대에 이르자 대량생산 체제가 가능해졌다. T모델은 탁 트인 곳에서 내리막길을 달려야만 간신히 시속 65㎞ 속도를 내는 정도였다. 이런 능력치에도 호응은 대단했다. 자동차 통근 시대의 문은 그렇게 열렸다.
출근길 환호가 '노상의 분노'로 뒤바뀌기 시작한 것은 통근인구가 급팽창하면서다. 1980년대 미국 사회심리학자들은 이 분노의 성질을 '도로 정체로 인한 특수한 종류의 분노'라고 명명했을 정도다. 버스, 지하철 통근자들 상태도 다르지 않았다. 버스기사 출신 영국 소설가 매그너스 밀스가 런던 지하철 종착역에 관해 쓴 글이 있다.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지하철 도착 직후에 오는 버스에는 재앙의 순간이다. 불과 몇 초 만에 버스는 밀림에서나 가능할 법한 아귀다툼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전쟁 같던 통근의 시대는 난데없는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어느새 대변혁기를 맞이했다. 팬데믹 광풍을 피하라, 벽을 높이 쌓고 안전한 곳에 머무르라, 거기가 일터다. 이런 회사 명령이 가능했던 것은 4차 산업혁명기 물적 토대가 이미 그럴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업종에 따라 통근의 종말은 진작에 가능했었다는 이야기다.
엔데믹과 맞물려 팬데믹 강령들은 속속 철회되고 있지만 가던 길을 완벽히 되돌릴 순 없는 법이다. 강제로 실험당한 원격근무는 기업문화, 직장인 가치관을 뒤흔들었다. 네이버, 카카오 등 IT 선두그룹이 저마다 최적화된 방식으로 새로운 근무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매년 다음 해 트렌드를 전망하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2023년의 중요한 현상 중 하나로 '오피스 빅뱅'을 들었다. 일에 대한 매우 근원적이고 폭발적인 변화의 의미로 '빅뱅' 단어를 골랐다는 게 김 교수 설명이다.
승진보다 개인의 삶, 급여보다는 복지, 자발적 사직, 프리랜서 열풍의 시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회사는 새로운 조직철학을 만들 것, 개인은 효율을 극대화할 것, 무엇보다 신뢰와 소통력을 키울 것. 전문가들은 이런 준비를 하라고 조언한다. 빅뱅의 시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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