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본초강목에 그려진 생강(왼쪽)과 매(梅, 매실)
먼 옛날 김씨 집안에는 젊은 부인이 있었다. 부인은 권세가 있는 관리 집안에서 시집을 왔는데, 그래서인지 결혼 전부터 자기 고집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왔다. 성격이 유별나고 까탈스럽고 별일도 아닌 일에 화를 잘 내서 하녀들이 편할 날이 없었다. 먹는 것도 맵고 열이 많고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으면서도 식이를 계절이나 때에 따라 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가슴과 옆구리가 결리고 횡격막이 답답하다고 하면서 자주 구토를 했다. 그럴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좀 쉬거나 신경쓰는 일이나 화를 줄이고 음식을 담백하게 조리하여 먹으면 좋아졌다. 그런데 어느 늦가을, 심한 구토를 하더니 전처럼 조리를 해도 줄어들 기미가 없었고, 거의 이틀 동안 구토를 하니 탈진을 해서 거의 죽을 것처럼 인사불성이 되었다.
시집간 딸이 병져 누웠다는 소식이 친정에 알려지자 권세 높은 관리인 친정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명의를 보내 왕진하도록 했다. 친정에서 보낸 의원이 시댁에 도착해 보니 벌써 몇몇의 의원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의원은 말없이 부인의 진맥을 시작했다. 주위 의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미 여러 처방을 써봤던 것 같았다.
한 의원은 “벌써 쓸만한 약은 다 처방해 봤는데, 입에 들어가기만 하면 토하니 더 쓸만한 처방이 없소이다. 적방(敵切)이라면 위까지 들어가도 토하지 않을턴데, 그 처방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더이상 자신이 없는 듯했다.
이때 옆에 있던 다른 노령의 의원은 자신의 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이렇게 기진맥진하니 독삼탕(獨蔘湯)이 아니면 살릴 수 없을 것이요. 내 전에 이런 환자를 독삼탕으로 살린 적이 있소.”라고 했다.
독삼탕은 인삼만을 1~2냥을 다려서 두 번 정도에 걸쳐 나눠서 마시는 탕이다. 한냥이 37.5그램이기 때문에 2냥이면 대략 75그램이나 되는 양으로 그 기운이 상당해서 적중하면 기사회생하지만 증에 맞지 않으면 비명횡사할 수 있어 경험이 부족한 의원은 함부로 투약하지도 못하는 처방이다.
친정에서 보낸 의원이 부인의 진맥을 하는 도중 옆에서 독삼탕을 투약해 보면 어떠냐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벌떡 일어나 “아니~ 사람을 죽일 셈이요? 이 부인에게 독삼탕은 독이 될 것이요.”라고 큰 소리를 냈다.
그러나 노령의 의원은 “경악전서에 보면 독삼탕은 보통 기허(氣虛)나 기탈(氣脫)에 주로 치료하면서 동시에 반위구토(反胃嘔吐)나 죽을 것처럼 숨이 찬 증상, 죽(粥)이나 탕(湯)이 위에 들어가면 바로 토하는 것을 치료한다고 적혀 있거늘. 나에게 모욕을 주는 것을 보면 자네의 의술이 장경악보다 뛰어나단 말인가?”라고 핀잔을 주는 듯하면서 무시했다.
경악전서는 중국 명나라 때 장경악이란 의사가 지은 당대 이후 최고의 의서 중 하나였다. 친정에서 온 의원은 노령의 의원이 경악전서를 들먹임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차분하게 말했다.
“어르신은 혹시 부인을 진맥해 보셨습니까? 부인의 맥은 난삭(亂數)해서 어지럽고 아주 빠르게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인의 입술과 입안은 바짝 말라 있고 혀를 보면 선홍색으로 열(熱)이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 얼굴은 붉고 가슴을 답답해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필시 양명(陽明)의 화(火)가 원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맥상과 증상을 보이겠습니까? 이것은 한마디로 구토의 원인이 화(火)와 열(熱)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양명(陽明)이란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의 경락을 지칭하는 것으로 양명(陽明)의 화(火)라는 것은 바로 위(胃)에 화(火)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미리 와 있던 의원들은 단지 부인이 구토를 심하게 하고 기진맥진하다는 말만 듣고 증상만 봤지 진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친정에서 보낸 의원은 부인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 갈증이 있는가?”
그러나 부인은 “입술과 혀뿐만 아니라 목구멍 곳까지 깊숙한 곳까지 마치 가뭄의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흙먼지가 날리는 것 같습니다.”라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의원은 다시 “그럼 찬물이 좋겠는가?”라고 물었다.
부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이 후덥지진하다는 듯 손으로 자신의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부인은 의원을 잠시 빤히 쳐다보는 것이 뭘 그렇게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의원은 하녀에게 지금 당장 우물에서 찬물을 길러오게 해서 시원한 물 반 사발을 주자, 구역감을 느끼는 듯하면서 다 마시더니 이 물만은 토하지 않았다. 부인은 다 마신 물사발을 몇 번이고 들어서 마시는 시늉을 하는 것을 보니 물이 약간 부족한 것 같아서 이제는 한사발을 주자 모두 마시고 갈증이 약간 안정이 되는 듯했다. 다행스럽게 물을 토하지 않았다.
친정에서 온 의원은 “저는 부인에게 태청음(太淸飮)을 처방하겠습니다.”
그러자 주위의 의원들이 “아니 부인은 지금 상한병(傷寒病, 감기에 의한 열병)도 아니고, 지금은 늦가을로 날씨도 이렇게 차갑고 서늘한데, 부인이 감당할 수 있겠소?”라면서 이구동성으로 말도 안된다는 식으로 반대의견을 냈다.
태청음(太淸飮)은 석고(石膏)를 군약으로 해서 지모, 석괵, 목통이 배합된 처방으로 위화(胃火)로 인한 번열과 광증(狂症), 피부발진, 구토 등을 치료하는데, 당시로서 열독(熱毒)을 치는 백호탕(白虎湯)과 쌍벽을 이루는 처방이었다. 그러나 이 처방 역시 변증이 잘못되면 증상은 순식간에 악화되고, 그나마 호롱불 끝에 달린 실낱같은 불씨까지 꺼뜨려 버릴 수 있는 처방이었다. 만약 위허(胃虛)에 잘못 사용되면 설사까지 주룩주룩해서 생사를 넘나들게 될 것이다.
가만 보니 이미 부인의 주치의는 암묵적으로 친정에서 보낸 의원이 되어 버렸다. 찬물을 먹임으로써 구토를 하지 않게 한 것을 보고서는 다른 의원들의 기세가 꺾인 것이다. 이제는 죽어도 친정에서 보낸 의원의 책임이요, 살리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친정에서 온 의원은 태청음을 조제해서 급하게 달인 후 차갑게 해서 부인에게 약을 먹도록 했다. 부인은 토하지 않고 다행히 약을 천천히 마시더니 얼굴의 붉은 기운이 약간 가신 채로 반나절 동안이나 곯아 떨어졌다. 물론 잠을 자는 동안에도 토하는 것은 없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노령의 의원이 친정 의원에게 물었다.
“보통 구토는 위가 허(虛)하거나 한(寒)해서 나타나는 경우가 흔한데, 그대는 어찌 위화(胃火)가 원인이라고 그렇게 자신할 수 있었던 것이오?”
그러자 친정에서 온 의원은 “병을 치료함에는 환자의 외증(外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의원된 자라면 환자의 내증(內證)을 더욱 중시해야 할 것입니다. 환자의 외증이라면 눈에 보이거나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일 것이고, 내증이라면 진맥(診脈)이나 설진(舌診)인 것입니다. 만약 부인의 맥이 허(虛)하고 느리며 무력했다면 어르신의 독삼탕이 적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인의 맥은 열로 인한 빠른 삭맥(數脈)이었습니다. 또한 <황제내경>에 보면 ‘모든 위로 거스르고 위로 치받치는 것은 모두 화에 속한다’ 또는 ‘제반 구토와 신물을 넘기는 것은 모두 열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구토의 원인이 위가 찬 것인 경우가 많지만, 의원들이 의서에 적힌 병기(病機)만을 한번이라도 떠 올렸다면 구토에 화열(火熱)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즘 의원들이 의서를 읽지 않는 것이 개탄스럽습니다.”라고 답했다.
주위에 있던 다른 의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한 의원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자존심을 버리고 배움이라고 청하고자 한 것이다.
“보통 민간요법에 보면 구토나 헛구역질에 생강(生薑)이 특효라고 해서 많이들 달여 먹기도 하고, 입에 넣어 씹어 먹기도 합니다. 심지어 임신 중 입덧에도 사용하고, 시집갈 때 가마멀미나 뱃사람들 배멀미에도 사용합니다. 심지어 의원들조차 생강을 사용하라고 처방으로 알려주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생강은 아무 때나 사용하면 안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이었다.
당시 생강은 구토나 오심에 특효로 알려진 약초였다.
그러자 친정에서 온 의원은 “구토의 원인에는 한열(寒熱)이 구분이 있습니다. 요즘 보면 구토나 오심에 무작정 생강(生薑)이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생강은 맛이 맵고 기운이 뜨거워 화열증(火熱症)에는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생강은 단지 평소 손발과 배가 차고 찬물을 싫어하는 사람의 구토에 특효할 것입니다. 구토에는 마땅히 냉증(冷症)과 열증(熱症)이 있으니 냉증 구토는 얼굴이 푸르고 손발이 차며 먹은 지 오래되어 토하는 것이고, 열증 구토는 얼굴이 붉고 손발이 뜨거우며 먹고 나서 바로 토합니다. 구토할 때 그 소리와 기세가 용맹하고 맥이 홍삭(洪數)하며 증에 번열(煩熱)이 많은 경우는 대부분 화열이 원인이 많았으니 반드시 구별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다시 “생강은 냉증 구토에 좋다면, 열증 구토에는 무엇이 좋습니까?”라고 묻자, “열증 구토에는 매실이 좋습니다. 청매실을 불에 구운 오매(烏梅)나 청매실을 소금물에 담갔다가 햇볕에 말리기를 반복해서 만든 백매(白梅), 청매실을 한번 쪄서 금매(金梅)로 만들었다가 이것을 다시 햇볕에 바짝 말려 두었다가 끓여 먹으면 특별한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의원들보다도 주위에서 듣고 있는 김씨 집안의 하인들이 감탄을 하면서 ‘냉에는 생강, 열에는 매실이래~’라고 수군덕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친정에서 온 의원은 이후 며칠 동안 자음(滋陰), 청량(淸凉)하는 처방으로 부인을 조리했고 이로써 부인의 구토는 완치가 되었다. 그러면서 부인에게 성정(性情)을 완만하게 하고 너무 화를 내지 말 것, 맵고 뜨거운 성질의 음식은 자제할 것을 당부하고 그래야 다시 구토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약방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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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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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전서> 一金宅少婦, 宦門女也, 素任性, 每多胸脇痛, 及嘔吐等症, 隨調隨愈. 後於秋盡時, 前症復作, 而嘔吐更甚; 病及兩日, 甚至厥脫不省如垂絶者. 再後延予, 至見數醫環視, 僉云 “湯飮諸藥, 皆不能受, 入口卽吐, 無策可施”; 一醫云 “惟用獨蔘湯, 庶幾可望其生耳”. 余因診之, 見其脈亂數甚, 而且煩熱躁擾, 莫堪名狀. 意‘非陽明之火, 何以急劇若此?’, 乃問 “其欲冷水否”. 彼卽點首, 遂與以半鍾, 惟此不吐. 且猶有不足之狀, 乃復與一鍾, 稍覺安靜. 余因以太淸飮投之, 而猶有謂 “此非傷寒, 又値秋盡, 能堪此乎?” 余不與辯. 及藥下咽, 卽酣睡半日, 不復嘔矣, 然後, 以滋陰輕淸等劑, 調理而愈. 大都嘔吐多屬胃寒, 而復有火證若此者, 經曰 諸逆衝上, 皆屬於火, 卽此是也. 自後凡見嘔吐, 其有聲勢湧猛, 脈見洪數, 症多煩熱者, 皆以此法愈之, 是又不可不知也.(김씨 집안의 젊은 부인은 관리 집안의 여식인데, 평소 제멋대로 생활하여 늘 흉협통 및 구토 등의 증상이 많아 그때그때 조리해서 나았다. 나중에 가을 끝 무렵에 전에 있던 증상이 다시 생겼는데, 구토가 더욱 심해 이틀이 되자 거의 죽을 듯이 탈진하고 인사불성하였다. 나중에 나를 불러 도착해보니, 의사 몇 명이 환자를 둘러서서 모두 “여러 약을 모두 받아들이지 못해 입에 들어가면 바로 토하니 쓸 만한 방법이 없다”고 하였고, 어떤 의사는 “오직 독삼탕만이 살릴 수 있다”고 하였다. 내가 진찰하니 맥은 어지럽고 아주 빠르면서도 번열하고 어쩔 줄 몰라 하니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양명의 화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급극한가?’고 생각하여 “찬물을 먹고 싶은가?”고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떡여 반 사발을 주자, 이것만은 토하지 않았다. 그래도 부족한 듯 보여 또 한 사발을 주자 다소 안정되었다. 이에 태청음을 투여하자, “이는 상한도 아니고 지금은 가을 끝 무렵인데,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란 말이 있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약을 넘기자 반나절 동안 곯아떨어지더니 다시는 구토하지 않았고, 후에 자음청량 등의 처방으로 조리해서 나았다. 구토는 대부분 위가 찬 것이 원인이지만 이처럼 화증이 있는 것도 있으니 내경의 제반 거스르는 것과 위로 올라가는 것은 모두 화에 속한다고 한 것은 이 경우이다. 이후로는 구토할 때 그 소리와 기세가 용맹하고 맥이 홍삭하며 증상이 번열이 많은 경우는 모두 이 법으로 고쳤으니, 이 또한 반드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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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寸口脉數, 其人卽吐. 寸口脉細而數, 數則爲熱, 細則爲寒, 數爲嘔吐. 중략. 陽脉緊, 陰脉數, 其人食已卽吐.(촌구맥이 삭하면 토한다. 촌구맥이 세삭할 때, 삭한 것은 열이고 세한 것은 한이니 삭하면 구토한다. 중략. 양맥이 긴하고 음맥이 삭한 사람은 음식을 다 먹은 후에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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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유함요령> 諸嘔吐逆衝上, 皆屬於火. 중략. 當分冷熱, 冷者, 面靑, 手足冷, 食久乃吐. 熱者, 面赤, 手足熱, 食已卽吐. 若常吐淸水, 或冷涎涌上者, 亦脾熱所致也.(구토하고 거슬러 오르며 위로 치받쳐 오르는 것은 모두 화에 속하는 증상이다.
중략. 마땅히 냉증과 열증으로 나누는데, 냉증은 얼굴이 푸르고 손발이 차며 먹은 지 오래되어 토한다. 열증은 얼굴이 붉고 손발이 뜨거우며 먹고 나서 바로 토한다. 항상 맑은 물을 토해내거나 차가운 침이 솟아오르는 것은 모두 비장의 열 때문이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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