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을 잡지 못해 미제로 지정된 사기사건이 지난해만 3만8258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 부서 인력난과 다각화된 범죄수법이 미제 사건을 누적시키는 요인이다.
경찰은 수사를 진행했지만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종결 처리가 어려운 사건을 '관리미제'로 지정해 별도 관리하고 있다. 피의자를 추정할 수 있는 추가 단서를 확보할 경우 수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취지다. 경찰 내 극심한 인력난 때문에 관리미제 통보는 사실상 사건 종결 처리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한 명의 수사관이 수십건의 사건을 담당하는 수사환경 특성상 수사관들이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사건에까지 몰두할 여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20일 경찰청이 제공한 '사기범죄 미제사건 건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이 범인을 잡지 못해 수사 끝에 '미제'로 종결 처리한 사기사건 수는 3만8258건에 이른다. 지난 2018년 6935건에 이어 2019년 8185건, 2020년 1만792건과 대비해 크게 늘었다.
피해자들은 속만 태우고 있다.
40대 김모씨도 투자 사기 피해를 입었지만 범인을 잡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사기 일당이 자신을 마진거래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라며 "투자금의 3배를 벌게 해주겠다"며 A씨에게 접근했다. A씨는 일당이 지정한 계좌주에게 약 5000만원을 입금했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김씨는 서울 도봉경찰서에 피해신고를 했지만 경찰로부터 "범인을 잡기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포통장 계좌주의 경우 다른 피해자 신고로 이미 재판에 넘겨져 일사부재리 원칙상 추가 처벌이 어려웠다.
계좌주 A씨는 지난 6월 17일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이진영 판사) 심리로 진행된 선고공판에서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A씨는 지난해 11월께 "법인 명의 계좌를 보내주면 대출을 해주겠다"는 사기 일당의 제의를 받고 법인 대포통장 계좌를 개설해 관련 카드 등을 건넸다.
사기 본범 추적의 경우 '피의자 특정이 어렵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김씨는 "(추적 결과) 거래소 인터넷프로토콜(IP) 소재지는 네덜란드, 계좌이체 인터넷뱅킹 서버 소재지는 미국이라더라"며 "경찰에서는 해외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피의자를 알아낼 수 없다고 했다"고 탄식했다. 결국 경찰은 김씨 사건에 대해 지난달 말 관리미제 처분을 내렸다. 김씨는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며 "경찰 수사로 아무런 진척이 없어 홀로 민사소송 진행 중인데 피해를 얼마나 보상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신종 사기 기법이 나오고 있지만 경찰 내부에선 수사인력이 부족해 수사에 속도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호소한다.
일선 A수사과장은 "사기 본범 세력의 경우 IP 우회 등 익명성을 악용하기 때문에 전력투구해도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B수사관은 "각 팀에서 보유하고 있는 건수가 적게는 20~30건, 많게는 50~60건에 이른다"며 "(범인이) 잡힌다는 보장이라도 된다면 할 텐데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현실적 한계가 크다"고 털어놨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수사권 조정 이후 대부분의 수사를 경찰이 맡아 처리하면서 수사 진행이 보다 더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문규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사권 조정에 상응하는 정도의 인력·예산 조정이 병행됐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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