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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삼다증(三多症)이 있던 사내의 병은 소갈병이 아니라 ○○이었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한동하의 본초여담] 삼다증(三多症)이 있던 사내의 병은 소갈병이 아니라 ○○이었다
<약용동물학>에 그려진 사향낭(麝香囊, 사향주머니), <본초강목>에 그려진 지구(枳椇, 지구목), 갈근(葛根, 칡뿌리).

옛날 한 마을에 키가 7척(尺)에 덩치가 크고 호탕하며 기개가 있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여름이면 생과일과 다른 계절이면 과일을 말린 과자(果子)를 즐겨 먹었고, 이와 함께 술 마시기를 좋아했다. 그러면서 날마다 물을 몇 말씩이나 마시고 밥을 먹는 양도 다른 사람들의 곱절을 먹으며 소변도 아주 많은 양을 자주 봤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어느 때부터 이 사내가 소갈병(消渴病)에 걸렸다고 수군거렸다.

사내가 술만 마시러 가면 주위에서 수군덕대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본인은 별로 불편한 증상이라고 할 것들이 없는데, 자신만 보면 “소갈병이네~” 혹은 “소갈병환자 왔네~”하기에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본인이 소갈병에 걸렸나 하고 걱정될 지경이었다.

소갈병은 요즘의 당뇨병과 비슷한 병증으로 다음(多飮), 다식(多食), 다뇨(多尿)의 삼다증(三多症)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갈병(消渴病)에 걸리면 이름 그대로 기운은 소모(消耗)가 되고 살은 빠지면서 입에 번갈(煩渴)이 생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내는 걱정스러워 동네 의원에게 진찰을 받아봤는데, 동네 의원들도 이구동성으로 소갈병이라고 진단을 했다. 그래서 소갈병을 치료하는 처방을 거의 수년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고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의원을 바꿔가면서 처방을 해 봤지만 마시고, 먹고, 소변 보는 양은 차도가 없었다.

사내는 마침내 ‘내가 소갈병에 걸려 죽게 생겼구나. 마시고 먹는 것을 줄일 수가 없고 소변도 멈출 수가 없구나.’하며 근심걱정이 많았다.

심지어 관(棺)과 수의(壽衣)까지 준비를 해 두고 자신의 아들을 믿을 만한 친구에게 부탁까지 해 두었다. 그래서 더더욱 술을 마시는 날도 늘었고 마시는 술의 양도 늘어서 항상 취해 있었다. 술에 취한 날이면 마을의 어귀에서 “아이고 내가 죽게 생겼네. 아이고~”라는 넋두리를 하면서 한숨이 많았다.

어느 날도 사내는 넋두리를 하고 있는데, 그 때 한 의원이 지나가다가 사내에서 물었다.

“자네는 무엇 때문에 죽음이란 단어를 그렇게 함부로 내뱉는가?”라고 하자, 사내는 “제가 소갈병에 걸렸는데 치료를 해도 낫지 않으니 죽기밖에 더 하겠소.”라고 하소연을 했다.

의원은 자신도 의원이라고 소개를 하고는 한번 진찰을 해 보기를 청했다.

의원은 사내의 증상을 자세하게 듣고서는 진맥 후에 이리저리 살집을 만져보더니 껄껄껄 웃으면서 “자네는 지금까지 치료를 잘못해서 죽을 뻔했네 그려. 자네는 소갈병이 아니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갈병은 삼다증 이외도 상소(上消), 중소(中消), 하소(下消)로도 구분하게도 하는데, 상소(上消)란 심한 갈증으로 물을 찾고, 중소(中消)란 음식은 잘 먹으나 살이 빠지면서 여위고 소변은 잦은 것이고, 마지막으로 하소(下消)란 소변이 기름 같으며 다리와 무릎이 마르고 가늘어진다고 했는데, 그러나 자네는 마시고, 먹고, 소변 보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증상은 없지 않는가? 특히 자네처럼 기육(肌肉, 살집과 근육)이 튼실하고 단단한 소갈병 환자는 없네. 또한 소변에서는 단내가 나지 않고 끈적이지도 않고 깨끗하니 더더욱 소갈이 아니네.”
사실 그러고 보니 사내는 이상하게 남들과 비슷한 정도로 밭일과 논일을 하면서도 그다지 피곤해하지도 않았고 체중이 줄지도 않았으면서 오히려 팔다리를 놀리는 것은 힘이 장사처럼 여전했다. 다만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 숙취로 고생스러워 할 뿐이었다.

사내는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의원님은 제가 소갈병이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그럼 어찌 저한테 삼다증이 생겼단 말이요?”라고 물었다.

의원은 “자네의 삼다증은 체질적인 것일 뿐일세. 자네는 체질적으로 비위(脾胃)가 튼실하고 간열(肝熱)이 있는데, 그래서 항상 속이 헛헛해져서 먹어도 먹어도 또 배가 고픈 것뿐이며, 물을 마시는 것은 상초(上焦)에 허열(虛熱)이 있어 평소 땀도 많이 나면서 더더욱 물이 당기는 것뿐이며, 소변양이 많은 것은 물은 당연히 마신만큼 빠져나가야 하는데, 나갈 곳은 소변길밖에 없고 마시는 물의 양이 많으니 어찌 소변양이 적을 수 있겠는가? 만약 마시는 물의 양은 많은데 소변양이 그보다 적다면 반드시 수종(水腫)이 생겼을 것이네.”하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시 정색을 하면서 “내 자세히 보니 자네의 문제는 특히나 단맛이 강한 과일과 술이 원인이네. 단맛이 강한 과일을 많이 먹으면 갈증이 심해지네. 그래서 갈증이 날 때 꿀물이나 조청물을 마시면 역시 갈증으로 물을 더 찾게 된다네. 또한 술을 마시면 소변양이 더 많아지네. 사람이 술을 마셨을 때 물만을 마셨을 때보다 술이 소변으로 더 빨리 빠져나오는 것은 술은 곡식이 발효되어 이미 익어서 소화가 다 된 액(液)이기 때문이네. 심지어 술이 나올 때 이미 마신 물까지 덩달아 빠져나오니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은 더 심해지는 것이네. 그러니 자네는 지금 소갈이 아니라 과일독과 주독(酒毒)에 시달리는 것일세.”라고 진단했다.

그러고서는 약방에 가서 사향(麝香)의 당문자(當門子)를 술에 적셔서 아주 작은 환약 10개를 만들어 지구자(枳枸子) 달인 물로 삼키게 했다. 사향 주머니를 쪼개 보면 속에 알맹이가 뭉친 것이 있는데 이것을 당문자(當門子)라고 한다.

사내가 처방을 묻자, 의원은 “이것은 사향으로 만든 환약이고 이 물은 헛개나무 열매인 지구자를 다린 물이네. 자네는 평소 단맛이 나는 과일을 너무 많이 먹고, 술을 지나치게 마셔서 적열(積熱)이 비장에 쌓여서 식사량도 많고 물도 많이 마신 것이네. 옛부터 사향이 옆에 있으면 꽃이 향을 잃고 과일이 영글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향이 과일독을 억제하기 때문이고, 지구자는 술독을 제거하는 것이네. 옛말에 집안에서 술을 담글 때 집 마당에 헛개나무인 지구목이 있으면 술을 빚어도 익지를 않고, 지붕을 받치는 서까래를 지구목으로 만들면 그 아래에서는 술을 빚을 수가 없다고 했다네. 게다가 집수리를 할 때 지구목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술이 다 익은 상태에서 지구목이 잘못 술독에 떨어지자 술이 모두 물로 변했다는 말도 있지. 그러니 사향과 지구자 두가지를 약으로 삼아 과일과 술의 독을 제거하는 것이네. 그리고 앞으로는 칡뿌리를 캐서 말려 두었다가 그것을 물에 다려서 자주 마시도록 하게. 말린 칡뿌리는 갈근(葛根)이라고 하는데, 간열(肝熱)을 내리고 주독(酒毒)을 풀면서 진액을 생성하기 때문에 갈증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네. 자네처럼 몸집이 크고 땀이 많고 얼굴이 붉은 체질에게는 갈근이 보약이 될 것이네.”
사내는 의원의 처방을 복용하자 번열감과 함께 갈증이 줄었고 음식을 먹는 양도 줄었다. 그리고 의원의 당부대로 평소 즐겨 먹던 과일과 술을 줄이고, 대신 칡즙을 조금씩 해서 자주 마셨다. 그랬더니 항상 위로 치받쳐 오르던 기운도 차분해지면서 특히나 평소에 뒷목이 뻐근하고 뭉치는 증상도 사라졌다. 열감과 갈증이 없으니 물을 마시는 양도 줄었고, 결과적으로 소변양도 적당했다. 사내는 삼다증이 없어지자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았던 마음의 병도 사라졌다.

다음(多飮), 다식(多食), 다뇨(多尿)는 소갈병의 주된 증상이지만 이 삼다증(三多症)이 있다고 해서 모두 소갈병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나 삼다증이 전혀 없는데도 소갈병인 경우도 많아 건강에 뜻이 있다면 삼가 주의해야 한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의부전록> 眉山有穎臣者, 長七尺, 健飲啖, 倜儻人也. 忽得消渴疾, 日飲水數斗, 食倍常, 而數溺. 服消渴藥而逾年疾日甚, 自度必死, 治棺衾, 囑其子於人. 蜀有良醫, 張立德之子, 不記其名. 爲診脈, 笑曰, 君幾誤死矣. 取麝香當門子以酒濡之, 作十許丸, 取枳枸子爲湯飲之, 遂愈. 問其故, 張生言, 消渴, 消中皆脾衰而腎敗, 土不能勝水, 腎液不上泝, 乃成此疾. 今診穎臣脈熱而腎且衰, 當由果酒食過度, 虛熱在脾, 故飲食兼人而多飲水, 水既多不得不多溺也, 非消渴也. 麝香能敗酒, 瓜果近輒不實. 而枳枸亦能勝酒, 屋外有此木, 屋中釀酒不熟;以其木爲屋, 其下亦不可釀酒. 故以此二物爲藥, 以去酒果之毒也.(동파잡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미산의 영신이라는 자는 키가 7척에 잘 먹고 잘 마셨으며 기개가 있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소갈병에 걸려 하루에 물을 몇 두나 마시고 평소보다 두 배나 먹으며 소변을 자주 보았다. 소갈약을 복용해도 해를 넘기도록 병은 날로 심해지기만 하니 반드시 죽겠구나 생각하고는 관과 이불을 장만해 두고 아들을 남에게 부탁하였다. 촉 지역에 훌륭한 의사가 있었는데, 장입덕의 아들이며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가 진맥을 하고는 웃으면서 “당신은 잘못해서 죽을 뻔했소.”라고 말했다. 사향 당문자를 술로 축여 환을 10개쯤 만들고, 지구자 끓인 물로 삼키도록 하니 마침내 나았다. 그 까닭을 묻자 장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소갈과 소중은 모두 비가 쇠약해지고 신이 망가진 것으로, 토가 수를 이기지 못하며 신액이 위로 올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오. 지금 영신의 맥을 진찰해보니 열이 있으며 신도 쇠약하니, 바로 과일과 술을 너무 많이 먹은 탓으로 비에 허열이 있기 때문에 음식을 남보다 많이 먹고 물을 많이 마시며, 많이 마셨으므로 소변이 많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 소갈이 아니었소. 사향은 술의 기운을 물리치며, 과일나무는 사향을 가까이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오. 그리고 지구자 역시 술의 기운을 이기니, 집 밖에 이 나무가 있으면 집 안에서 술을 빚어도 익지 않으며 그 나무로 지붕을 만들면 그 아래에서는 역시 술을 빚을 수 없소. 때문에 이 두 가지로 약을 만들어 술과 과일의 독을 제거한 것이오.”라고 했다.)

< 식료본초> 枳椇. 昔有南人修舍用此, 誤有一片落在酒甕中, 其酒化爲水味.(지구목. 옛날 남방 사람들은 집수리를 할 때 지구목을 썼는데, 한 조각이 술 항아리에 잘못 떨어져 술이 물맛으로 변했다.)

< 동의보감> 消渴有三. 上消者, 舌上赤裂, 大渴引飮, 膈消是也. 中消者, 善食而瘦, 自汗, 大便硬, 小便數. 所謂癉成爲消中者, 是也. 下消者, 煩燥引飮, 耳輪焦乾, 小便如膏, 腿膝枯細, 所謂焦煩水易虧者, 是也.(3가지의 소갈. 상소란 혀가 벌겋고 갈라지며 심한 갈증으로 물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격소(膈消)이다. 중소란 잘 먹으나 여위고 자한이 나며, 대변은 단단하고 소변은 잦은 것이다.
소위 단병이 소중이 된다는 것이 이것이다. 하소란 번조가 있고 물을 찾으며 귓바퀴가 마르고 소변이 기름 같으며 다리와 무릎이 마르고 가늘어지는 것이다. 소위 불이 타오르면 물이 쉽게 마른다는 것이 이것이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