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작년 7500명 감경처분
'현대판 장발장' 구제 위해
일자리 활성화 등 지원 필요
고령층의 생계형 범죄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지난해 약 7500명의 '현대판 장발장'들을 감경처분을 통해 구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계형 범죄 반복을 막으려면 단순 처벌만이 능사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사회적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생계형 범죄 증가, 감경처분 늘어나
4일 경찰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절도 피의자는 매년 증가 추세다. 2019년 1만5086명에서 2020년 1만6496명, 2021년 1만8339명으로 늘었다.
같은 시기 생계형 소액 절도 건수도 크게 늘었다. 절도 피해 금액이 10만원 이하인 사건은 2019년 4만8597건에서 2020년 5만3074건, 2021년 5만4987건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현대판 장발장'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경찰의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제도에도 노인 생계형 범죄 사건이 몰리고 있다.
경미범죄심사위원회는 생계형 범죄 등 죄질이 경미한 범죄자를 대상으로 전과자 양산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한순간의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전과자를 만드는 대신, 즉결심판이나 훈방 조치를 통해 사회 복귀를 돕는다는 취지로 2018년부터 전국 확대 시행됐다. 경찰·법조 전문 위원들이 정기 위원회를 개최, 범죄 피해 정도 및 죄질 등을 고려해 형사입건 사건은 즉결심판으로, 즉결심판 청구 사건은 훈방조치로 감경처분을 내린다. 일선서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A경위는 "심사 대상에 오르는 사건 대부분이 노인 절도 등 생활형 범죄"라며 "홀로 거주하는 노인이 생계급여 등 생활비가 다 떨어져 마트에서 물건 한 개를 몰래 가져오다 적발되는 식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경미범죄심사위원회를 통해 감경처분을 받은 사례도 최근 급증하고 있다. 2021년 경미범죄심사위원회를 통해 7726명의 대상자 중 7498명이 감경처분을 받았다. 연도별 감경처분이 내려진 인원은 2018년(6045명)·2019년(6511명)·2020년(6158명)으로 지난해 크게 늘었다.
■처벌만이 능사 아냐
고령층의 생계형 범죄가 증가하는 배경으로는 노인 빈곤이 꼽힌다. 지난해 기준 한국 노인 빈곤율은 43.4%로 OECD 평균인 13.1%보다 3배 이상 높았다. 또 2021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35만9672명 중 65세 이상 수급자 비율도 37.6%(85만2396명)에 달했다. 생계형 범죄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의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돕고 재범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합당한 처벌과 함께 사회적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편의점에서 라면 한 봉, 빵 몇 개 등을 훔치는 것과 같은 지극히 경미한 범죄에 대해서는 생계형 범죄자의 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해 기계적 형사 사법 절차 적용을 삼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대출 심사위원으로 몸담고 있는 '장발장 은행'과 같은 인도적 지원 제도 확대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장발장 은행은 경미한 범죄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생계 곤란으로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갈 위기에 처한 빈곤·취약 계층에 대해 심사를 거쳐 벌금을 빌려주는 단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소액의 생계형 범죄더라도 반복될 경우 중범죄로 진화할 수 있어 적절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도 "취약 계층의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일자리 활성화 같은 사회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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