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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오른쪽)와 고황(膏肓)에 병이 들었다는 진(晋)나라 경공(景公).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 경공(景公)의 꿈에 큰 여귀(厲鬼)가 나타났다.
그 귀신은 머리는 풀어헤쳐 땅에 끌리게 하고 가슴을 치고 뛰면서 말하기를 “네가 나의 손자를 죽였구나. 너에게 충성을 다한 신하조차도 가차 없이 죽이는 너는 의리(義理)를 모르는 놈이다. 내가 너에게 복수할 것을 상제께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너는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궐의 대문과 이어서 침문(寢門)을 부수고 들어왔다.
경공은 겁이 나서 내실(內室)로 도망갔으나 또다시 내실의 문까지 부수면서 다가왔다. 경공은 식은땀을 흘리고 두려움에 떨며 꿈에서 깨어났다. 지금까지 자신을 음해하거나 통치하고자 하는 뜻에 반대하는 신하들은 유배를 보내거나 고문을 해서 죄를 묻기도 하고 심지어 목을 쳐낸 경우가 여럿 있었다. 그러나 이 귀신은 어떤 신하의 원한이 사무쳐 꿈에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경공은 먼저 꿈을 해몽하고자 했다. 그래서 궁 인근의 뽕나무밭에 사는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게 했다.
경공은 꿈에서 봤던 내용을 일러주면서 “대체 누구의 원한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점쟁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다시 경공은 “그럼 내가 어찌해야 하느냐?”하고 물었다.
점쟁이는 대뜸 “새로 수확한 보리를 드시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경공은 갑자기 새로 수확한 보리를 먹을 수 없다니 점쟁이의 말에 화를 내며 점쟁이를 물리쳤다. 경공은 평소 보리를 좋아했기에 특히 무엇보다 햇보리를 즐겼다. 그러나 사실 점쟁이는 올해 보리를 처음으로 수확하는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점괘를 내놓은 것이었지만, 경공은 단지 보리를 먹지 못할 것으로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경공은 그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간혹 가슴부위를 밧줄로 묶어 놓은 듯한 뻐근함이 있었는데, 빈도가 심해졌다. 병은 점점 심해졌고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이 없었다. 당시 진(晉)나라는 진(秦)나라와 사돈 간이었는데, 진(秦)나라에 훌륭한 의사가 있다는 것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청했다. 그러자 진왕(秦王)은 의완(醫緩)이란 의원에게 명하여 속히 진(晉)나라로 가게 했다. 의완은 진나라의 이름난 의원으로 성은 고씨(高氏)이고 이름은 완(緩)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즈음 경공은 또다시 꿈을 꿨다. 그런데 자신의 몸속에 있던 병(病)이 두 더벅머리 사내아이가 되어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한 사내아이가 말하기를 “의완은 훌륭한 의원이니 우리를 다치게 할까 두렵네. 어디로 도망가서 숨어야 할까?”라고 하자, 옆에 있던 사내아이가 “만약 우리가 황(肓)의 위와 고(膏)의 아래로 가서 숨으면 우리를 찾지 못할 것이니 어찌하지 못할 것이네.”라고 하였다.
그러나 걱정을 하던 사내아이가 “아니 고황(膏肓)이 어떤 곳이길래 우리를 찾지 못한다는 것인가?”하고 묻자, “고황은 사람의 몸에서 가장 깊숙한 곳으로 그래서 고황에 병이 들면 이곳은 침구(鍼灸)가 미칠 수 없고 약이(藥餌) 또한 이를 수 없다네.”라고 대답하였다.
두 사내아이 귀신들은 대화를 마치자 서로 기뻐하면서 각각 그 자리에 머물렀다. 이로부터 열흘 후 의완이 도착해서 경공을 진찰했다.
경공의 얼굴을 관찰하고 그 맥(脈)을 살피고는 한참 후에 탄식하며 말하기를 “진후의 병은 치료할 수 없습니다. 진후의 병은 지금 고황(膏肓)에 있어 뜸으로도 다스릴 수 없고, 침도 그곳까지 미치지 않고, 약의 힘도 그곳까지 이르지 않으니, 어찌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경공은 낙담하기는 커녕 놀라며 “그대는 참으로 고금(古今)에 드문 명의로다.”하고 하면서 백금(百金)을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했다.
의완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왕은 심병(心病)을 앓고 있어서 고황(膏肓)에 병이 들었다고 했고, 심병은 치료할 방법이 없어 불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후한 돈을 주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단지 혹시나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을 뿐이었다.
시간은 흘렀다. 음력 6월 어느 날 아침, 경공은 새로 생산된 보리를 먹고자 하여 전인(甸人)에게 왕실 주변의 공전(公田)에서 보리를 수확해서 바치게 했고, 궤인(饋人)에게 햇보리로 밥을 짓게 했다. 전인(甸人)은 왕실의 식량을 조달하는 밭을 관장하는 사람이고, 궤인(饋人)은 왕의 식사를 준비하고 동시에 독의 여부를 검사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햇보리로 지은 밥이 진상되자, 경공은 지난번에 자신의 꿈을 해몽했던 뽕나무밭의 점쟁이를 불렀다.
경공은 점쟁이에게 올해 갓 수확한 보리밥을 내보이며 “네가 먹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올해의 햇보리밥이 지금 내 앞에 있도다.”라고 말했다.
점쟁이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고 있던 차에 경공은 “이놈의 목을 당장 쳐라!!!”하고 호위 무사에게 명해 점쟁이의 목을 쳐서 죽이도록 했다.
경공에게 지금까지 죽임을 당한 신하들도 이러했으리라. 자신이 왜 벌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설령 죄를 받더라도 스스로를 방어하고자 변론하거나 핑계를 될만한 시간도 주지 않으니 억울할 만 했다.
이후 경공이 보리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경공의 배가 갑자기 더부룩해지면서 창만(脹滿)이 나타났다. 경공은 보리밥 한술을 뜨기 전에 먼저 변소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신하들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경공은 변소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그러나 신하들은 왕이 용변을 보고 있는 상황인지라 차마 들어가 확인해 볼 수 없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벌써 정오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신하가 오전에 선잠을 자다가 자신이 경공을 업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게 되었다. 신하는 ‘기이한 꿈이로구나’하고 생각하고는 왕의 처소에 와서는 경공이 어디에 계시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 신하는 변소 앞에 줄지어 있는 신하들을 뿌리치고 변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안타깝게도 경공은 변소에 빠져서 승하한 이후였다.
아마도 경공은 평소 앓고 있던 심병으로 인해 비명횡사(非命橫死)했을 수 있으나 혼자만 있던 변소에서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모를 일이다. 경공을 발견한 신하는 경공을 업고 나왔다. 신하는 자신이 경공을 업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꾼 것은 필경 죽어서도 모시라는 하늘의 뜻으로 알고 경공의 상을 치를 때 자신도 순장하기를 원해서 함께 순장을 청했다. 이로써 진(晉)나라 경공(景公)은 변소에 빠져 죽은 최초이자 유일한 왕으로 회자되었다.
이번 이야기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가장 처음 기록된 이후 의서에서도 언급되면서 의원들은 병세가 심해진다는 표현을 ‘병이 고황(膏肓)으로 들어갔다’거나 혹은 병세가 깊어지면 ‘고황병(膏肓病)으로 고치지 못한다’고 했다. 또한 난치병이나 고질병을 고황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심지어 용렬한 의원은 치료에 자신이 없으면 ‘병이 고황에 들어 별 수 없다’고 핑계를 대기도 이용하기도 했다.
의사들 중 자만에 빠진 경우에도 고황병에 걸렸다고 했다. 어리석은 의사들은 서로 질투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기도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의사로서 지켜야 할 법도는 다음과 같다. 말을 많이 하거나 농담과 우스갯소리를 해서는 안 되며, 다른 의사를 비방, 공격하거나 자신의 공덕을 과시해서도 안 된다. 우연히 질병 하나를 치료했다고 해서 고개를 쳐든 채 잘난 척을 하고 스스로 만족한 모습을 보이며 천하에 자기에 비길만한 사람이 없다고 착각하는 의사들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의사들의 고황병[醫人膏肓]이다. 실력도 없으면서 잘란 척하는 의사에게는 약이 없다는 것이다.
원래 고황은 침을 놓는 혈자리 이름이었다. 고황수(膏肓腧)는 등에 있는데, 흉추 4번 후방돌기에서 양쪽으로 약 3촌 정도 떨어진 곳이다. 3촌은 자신의 손가락 4개를 이어붙인 거리만큼 떨어진 거리다. 고황수는 척추 양쪽에 하나씩 있는데, 좌측 고황부위는 바로 심장과 같은 높이에 있다. 고황수는 해당 부위가 아픈 등 통증 뿐만 아니라 등 부위의 냉감, 기병(氣病), 해수천식, 폐병, 심병, 건망증 등을 치료하는 명혈(名穴)이다. 그래서 고황부위가 아프다고 해서 모두 난치나 불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이야기에서 귀신들이 서로 달라붙어 숨었다는 고황은 엄밀하게 말하면 심장이 위치한 좌측 고황수를 말한 것으로 고황에 병들었다는 것은 심장병이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병이 고황에 이르면 죽는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제목의 ○○은 고황(膏肓)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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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의언> 左氏傳. 晉侯夢大厲, 被髮及地, 搏膺而踊曰殺余孫, 不義, 余得請於帝矣. 壞大門及寢門而入, 公懼, 入于室, 又壞戶. 公覺, 召桑田巫, 巫言如夢. 公曰何如. 曰不食新矣. 公疾病, 求醫于秦, 秦伯使醫緩爲之. 未至, 公夢疾爲二竪子曰彼, 良醫也. 懼傷我, 焉逃之. 其一曰居肓之上膏之下, 若我何. 醫至曰疾不可爲也. 在肓之上膏之下, 攻之不可, 達之不及, 藥不至焉, 不可爲也. 公曰良醫也, 厚爲之禮而歸之. 六月丙午, 晉侯欲麥, 使甸人獻麥, 饋人爲之, 召桑田巫, 示而殺之. 將食張如厠, 陷而卒. 小臣有晨夢負公以登, 及日中, 負晉侯出諸厠. 遂以爲殉.(춘추좌씨전. 진후의 꿈에 큰 여귀가 머리는 풀어헤쳐 땅에 끌리게 하고, 가슴을 치고 뛰면서 말하기를, “네가 나의 손자를 죽였으니, 의리를 모르는 놈이다. 내가 너에게 복수할 것을 상제께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고 하면서 대문과 침문을 부수고 들어오자, 경공은 겁이 나서 내실로 들어가니 또 내실의 문을 부수었다. 경공이 꿈에서 깨어 뽕나무밭에 사는 무당을 불러 점을 치게 하니 무당의 말도 꿈에서 들었던 말과 같았다. 경공이 “어떠하냐?”고 물으니, 무당은 “새로 생산된 보리를 먹지 못하실 것입니다.”고 대답하였다. 경공이 과연 병이 위중해져서 진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의원을 보내주기를 요구하니, 진백은 의원 완을 보내어 치료하게 하였다. 의원이 도착하기 전에 경공이 꿈을 꾸니, 병이 두 더벅머리 아이가 되어 한 아이가 말하기를, “저 의원은 훌륭한 의사이니, 우리를 다치게 할까 두렵다. 어디로 도망해야 하겠는가?”라고 하자, 한 아이가 말하기를, “황의 위와 고의 아래로 가서 있으면 우리를 어찌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의원이 와서 진찰한 다음 경공에게 말하기를, “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병이 황의 위와 고의 아래에 있으므로 뜸으로도 다스릴 수 없고, 침도 그곳까지 미치지 않고, 약의 힘도 그곳까지 이르지 않으니, 어찌할 수 없습니다.”고 하니, 경공은 “참으로 훌륭한 의사로구나.”라고 하고서 후하게 예우하여 돌려보냈다. 6월 병오일에 진후는 새로 생산된 보리를 먹고자 하여 전인에게 보리를 바치게 하고 궤인에게 새로 생산된 보리로 밥을 짓게 하고서, 뽕나무밭의 무당을 불러 새로 생산된 보리로 만든 음식을 보이고는 그를 죽였다. 그리고서 장차 밥을 먹으려고 하자 갑자기 배가 팽창하여 변소에 갔다가 변소에 빠져 죽었다. 어떤 소신이 새벽에 경공을 업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는데, 정오에 진후를 업고 변소에서 나왔다. 드디어 그를 순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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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取膏肓腧穴法. 須令患人就床, 平坐曲膝齊胸, 以兩手圍其足膝, 使胛骨開離, 勿令動搖, 以指按四顀微下一分, 五顀微上二分, 點墨記之, 卽以墨平畵, 相去六寸許, 四肋三間, 胛骨之裏, 肋間空處, 容側指許, 摩膂肉之表, 筋骨空處, 按之, 患者覺牽引胸戶, 中手指痺, 卽眞穴也.(고황수혈 취혈법. 환자를 평상에 앉히고 가슴 높이까지 무릎을 굽혀 세운 뒤 양손으로 굽힌 다리를 감싸 안아 견갑골이 양쪽으로 벌어지도록 한다. 이때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손가락으로 4번째 흉추의 조금 아래 1푼이나 5번째 흉추의 조금 위 2푼을 짚어서 점을 찍어 놓는다. 그 위에 먹으로 6촌 정도 길이의 가로선을 그려 3, 4늑골간 견갑골 안쪽으로 늑간의 빈곳에서 손가락을 옆으로 누이면 들어갈 정도의 자리를 찾는다. 등 근육의 겉을 문지르고 늑골 사이 틈을 찾아 눌렀을 때 환자가 가슴속이 당기고 가운데 손가락이 저리는 것을 느끼면 그 자리가 정확한 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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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손익> 醫人膏肓. 爲醫之法, 不得多語, 調笑, 談謔, 訾毁諸醫, 自矜己德, 偶然治瘥一病, 則昂頭戴面, 而有自許之貌, 謂天下無雙, 此醫人之膏肓也.(의사들의 고황병. 의사로서 지켜야 할 법도는 다음과 같다. 말을 많이 하거나 농담과 우스갯소리를 해서는 안 되며, 다른 의사를 비방, 공격하거나 자신의 공덕을 과시해서도 안 된다. 우연히 질병 하나를 치료했다고 해서 고개를 쳐든 채 잘난 척을 하고, 스스로 만족한 모습을 보이며, 천하에 자기에 비길만한 사람이 없다고 착각하는 의사들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의사들의 고황병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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