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협약 위반·요건 불충족 주장
'국가 경제 위기' 해당되는지
'결사의 자유' 침해했는지 쟁점
활기 되찾은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종료한 지 사흘째인 12일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있는 화물차가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가 지난 9일 파업을 철회했지만 업무개시명령을 둘러싼 화물연대와 정부 간 관련 행정소송은 계속될 전망이다. 민주노총 등은 정부 업무개시명령 이후 국제노동기구(ILO)에 개입해달라는 서한을 보낸 바 있다. 정부는 "불가피하게 발동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 9일 파업을 종료한 화물연대는 최근 서울행정법원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업무개시명령 취소 소송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미복귀자 2명에 대한 형사고발을 취하하지 않은 데다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어 업무개시명령의 위법성을 다퉈볼 만하다는 판단에서다.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명령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집단 화물운송거부로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초래될 경우 등에 대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릴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을 송달받고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다음 날 자정까지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복귀하지 않을 경우 화물운송 종사 자격 6개월 이내 정지 및 취소에 해당하는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쟁점이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시멘트 등 물류가 일시적으로 멈췄지만 이를 '심각한 위기'로 규정할 명확한 기준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종필 고용노동부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6~9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17차 ILO 아시아태평양 지역총회'에 참석해 "집단운송거부는 국가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국민의 생명, 건강, 안전을 심히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불가피하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입장도 있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단순히 시멘트 운송 거부로 공사 진행에 심각한 위기가 초래되는 정도가 아니라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데, 닷새간의 시멘트 운송 거부로 전 세계 경제규모 10위인 한국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다고 판단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자발적 파업 참여를 '집단운송거부'로 볼 수 있을지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비준한 ILO 협약이 금지하는 '결사의 자유'(제87·98호)를 침해하고 강제노동(제29호)을 강요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동현 부장판사가 사법정책연구원에서 펴낸 '결사의 자유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비준과 노동법의 쟁점' 보고서를 보면 정당한 파업을 주도한 노동조합에 대한 제재는 중대한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이다. 특히 파업 참가를 이유로 한 처벌을 금지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국의 이행의무 중 하나다. 화물기사는 경찰과 군인이나 병원 사업과 같은 '필수서비스'에도 해당하지 않아 파업금지 대상 업종도 아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유권해석이 이뤄진 적이 없다 보니 백지 상태에서 법리 검토가 필요한데, 법원은 발효된 협약을 참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ILO 법리상 업무개시명령은 협약 위반인 만큼, 업무개시명령 처분 취소 가능성 역시 커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인 화물기사들의 집단파업 자체가 불법이란 입장이다. 정부는 이미 화물연대가 파업을 철회한 만큼 업무개시명령의 효력이 사실상 사라져 소송 이익이 없다는 주장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파업 종료에 따라 위기경보단계가 '심각'에서 '주의'로 하향 조정되면 시멘트 등 3개 업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도 자동으로 해제된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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