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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에 한국전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FT


"우크라 전쟁에 한국전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FT
우크라이나 국방군의 지뢰제거팀이 12일(현지시간) 동부 도네츠크 북부의 지뢰 지대에서 지뢰를 제거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칼럼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결국 1953년 한국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평화협정 없이 휴전으로 전쟁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로이터뉴스1

[파이낸셜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국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이하 현지시간) 지적했다.

일부 보수파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치 독일에 독일인 인구가 많은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일부를 내어주고 전쟁을 끝내려 했던 1938년 뮌헨협정식 합의로, 일부 좌파는 미국이 수렁에 빠졌던 베트남 전쟁의 재판이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상은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전쟁 상태인 한국전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과 북한은 1953년 휴전협정에 의해 전투 행위를 중단했지만 지금껏 평화협정은 맺지 않은 상태다.

대신 수십년에 걸친 전투 중단, 휴전만 있을 뿐이다.

FT는 이날 칼럼에서 우크라이나에서도 전쟁이 끝나는 대신 한국처럼 휴전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FT 외교 부문 수석 칼럼니스트 기디언 라흐만은 이같은 전망에 세가지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그 누구도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처지가 아니고, 양국의 정치적 입장이 평화협정을 맺기에는 극도로 멀어져 있다는 점이 평화협정 가능성을 멀어지게 하고 있다. 대신 두 나라 모두 심각한 손실을 겪고 있는 터라 휴전이 그만큼 매력적이라고 라흐만은 설명했다.

러시아, 추가 손실 감당 부담

FT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승리라고 떠벌리고, 자신을 스웨덴과 21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피요트르 대제인 것 마냥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쟁에서 이미 패배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군은 포위했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는 물론이고, 하르키우, 헤르손에서 철수했고, 민간인 부분 동원령으로 인해 러시아 남성 수천명이 러시아를 탈출했으며, 동원령에도 불구하고 전선 흐름을 바꾸는 것 역시 실패했다.

지금까지 러시아 군인 약 10만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FT는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주간 사망자는 참혹했던 1차대전의 참호전 당시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라흐만은 푸틴이 전쟁 패배를 시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휴전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자신과 거리를 둔 군부의 판단에 따른 것 같은 형식을 취할 것으로 예상했다.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할 때 그랬던 것처럼 푸틴 자신은 뒤로 물러나 있고, 군이 휴전을 결정하는 형식으로 정치적 타격을 비켜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근 '명령: 한국전부터 우크라이나전에 이르는 군사작전의 정치학'이라는 책을 낸 로런스 프리드먼 경도 양국 군이 휴전 협정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프리드먼은 한국과 우크라이나 전쟁 간에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전 휴전을 보면 완전한 평화협정 없이도 "(양국)군을 떨어뜨려 전투를 중단할" 가능성이 상존함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은 영토를 확보하거나, 정치적 이득을 얻지 못하는 한 전쟁 종식을 선언할 수 없겠지만 전쟁을 일단 중단하는 것은 수용할 수도 있다. 군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잔혹한 전쟁의 참상을 감안해 인도적 목적에서 전쟁을 잠시 멈춘다고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심각한 타격

우크라이나는 조금 다르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수세에서 공세로 돌아섰고, 사기도 높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4년 러시아에 빼앗겼던 크름반도도 모두 수복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FT는 그러나 우크라이나 역시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한국전 당시의 휴전협정과 같은 휴전에 끌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처럼 우크라이나 역시 매일 심각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고, 잔인하면서도 효과적인 러시아의 인프라 공습에 시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엄혹한 겨울을 물도, 전기도 없이 지내야 할 판이다. 이때문에 피난민 수백만명이 되돌아오기는 커녕 추가 피난이 불가피하다.

피난 기간이 수개월에서 수년으로 늘어나면 이들이 다시 돌아오기는 더 어려워진다.

크름반도 수복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는 비관 전망이 나온다.

크름반도를 수복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격렬한 전투와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크름반도는 주민 대부분이 러시아에 우호적이어서 전투를 해도 마치 외국 영토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은 불리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휴전의 달콤함

휴전은 우크라이나에 당장 상당한 경제적 지원이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각국이 우크라이나 재건에 참여하면서 외국의 지원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FT는 한국도 전쟁 직후 완전히 파괴됐지만 지금은 번영을 누리며 선진국이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라흐만은 이와 달리 여전히 푸틴이 이끌고 있는 러시아는 국제 사회에서 계속 고립되고, 점점 가난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이같은 상황이 현실이 되면 오랜 바람이던 러시아의 정치적 재건 역시 마침내 시작될 수 있다고 라흐만은 기대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