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편까지 이어진 징검다리마다 금덩이가 놓여 있다. 다만, 다음 다리에 닿으려면 언 강바닥을 걸어가야 한다. 물의 깊이도 알지 못하지만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다 아뿔싸, 강가에서 장난 치던 아이가 자기 몸통만 한 돌덩이를 그 위로 던져버렸다. 다들 금궤 하나둘씩 손에 쥐고 깨져버린 얼음 아래로 가라앉았다.
국내 채권·부동산 시장을 마비시킨 '레고랜드 사태' 요약본이다. 증권사, 저축은행, 캐피털사들은 한동안 이어진 부동산 상승장을 타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열을 올렸다. 사업 초기 자금을 빌려주는 브리지론, 그 후 공사비에 쓸 돈을 조달하는 본PF까지 수월하게 진행됐다. 회수도 착착 이뤄져 그때마다 따먹는 과실은 달콤했다.
하지만 김진태 지사가 최종 책임자로 있는 강원도가 그 판을 부쉈다. 강원도가 지급보증했던 2050억원 규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최종 부도처리되면서다. 국채에 버금가는 신용도를 지닌 지방채가 한없이 가벼워지는 과정을 지켜본 채권시장은 급랭됐다.
고금리 회사채도 투자자를 못 구했고, 대기업은 미매각 굴욕을 맛봤다. 자금을 융통할 길이 막혔다. 그 여파로 부동산PF 시장도 굳었다. 강원도는 사태 두달 반 만에 보증채무 전액을 상환했지만 신뢰 위에 쌓아올린 금융시장은 깨진 뒤였다. 증권사 직원 수백명이 짐을 쌌다.
우리는 시선을 금덩이만 보고 뛰었던 금융사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 살얼음판임을 몰랐을까. 두려움만 잠깐 견디면 막대한 보상이 주어진단 일념으로 발 아래를 외면한 건 아닐까.
원자재 가격 상승, 금리인상, 수요 둔화, 강달러 등 수많은 악재는 진즉에 있었다. 미분양 역시 속출했다. PF대출 자체도 사업성을 근거로 이뤄지는 탓에 애초에 안전성이 떨어진다. 신용평가사들은 일찍이 과중한 부동산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이 증권사 신용위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내년엔 예고된 경기침체, 부동산 폭락을 맞닥뜨려야 한다. 금융시장 '붕괴'를 겪기 전에 물을 가둬 얼음을 두껍게 얼리든, 울타리를 쳐 진입장벽을 높이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새 판을 짜야 한다. 깨진 얼음은 녹였다 다시 얼리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의도와 무관하게 돌 던진 아이에겐 응당한 제재가 필요하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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