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열명 중 넷은 지난 1년 동안 성매매 경험이 있다.' 당신이 남성, 아니 여성이라도 이 말을 믿겠는가. 2010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통계다. 남성들의 거센 반발은 당연했다. 과장된 이 통계는 무효화됐다. 천문학적 숫자 속의 진실은 알 길이 없다. 어림짐작이라도 해보자는 게 통계인데 치명적인 맹점이 있다. 표본조사라는 방식이다. 표본을 조종하면 얼마든지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 원천적으로 조작에 취약한 게 통계다.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이 감사의 도마에 올랐다. 국가 차원의 '통계 마사지' 의혹이다. 고분고분 지시를 따랐던 한국부동산원의 집값 낮추기는 헛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우롱도 그런 우롱이 없다. 기획재정부도 작위적인 고용통계 등으로 '통계 장난'을 쳤다. 엉터리 통계를 근거로 대통령은 자화자찬하며 즐거워했다. '소득주도성장'의 성패를 판가름할 마지막 열쇠는 통계청이 쥐고 있었다. 그래도 국가 통계기관인 통계청만은 자존심을 잃지 않았다. 눈치를 보지 않은 소신파 청장은 눈엣가시가 됐다.
검찰총장도 흔들어대는 권력인데 작은 외청장 손목 비틀기쯤이야 손쉬운 일. 갈아치운 청장도 유경준, 황수경 둘이나 된다. 국회의원이 된 유경준은 바른 통계를 위해 그 나름대로 노력한 인물이다. 통계 바로잡기 공모전을 열었고, 성매매 사례와 같은 왜곡된 통계에 취소권을 행사했다. 공모전은 중단됐다. 말 잘 들으라고 앉혀 놓은 후임 청장도 부끄러웠을 것이다.
통계는 국가 정책의 바탕이다. 정확한 혈압과 체온 측정이 의료의 기본인 것과 같다. 통계가 허위라면 예산이 엉뚱한 곳에 집행돼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 가난한 사람이 20%인지, 40%인지에 따라 빈민예산은 크게 달라진다. 통계 조작은 그래서 위험한 독배(毒杯)다. 목숨마저 잃을 수 있는.
통계는 통치의 방편으로서 집권자에 의해 곧잘 조작된다. 다만 비민주적, 독재국가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수출액이나 물가, 쌀 생산량을 부풀리거나 줄여 발표한 어두운 과거가 있다. 제3공화국이나 그 전의 일이었다. 이웃 중국의 통계나 집계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코로나19 감염자를 말도 안 되게 축소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지방 관료가 좋은 평가를 받고자 생산량을 조작하는 것은 관습처럼 됐다. 언젠가 폭발할 버블의 진원지다. 중국 전문가 디니 맥마흔은 이런 중국을 '암흑 상자'라고 부른다.
민주의 시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통계 조작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민주주의를 떠받드는 척하면서 뒤로는 독재 정권이나 하는 짓을 저질렀다. 권력과 거리가 먼 통계청은 힘이 없다. 그저 정확한 통계를 위해 숫자와 싸우는 데 자부심을 갖는 청장이며 직원들이다. 통계청이 제도적으로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받아야 하는 까닭이다. 사법부만 독립이 중요한 건 아니다. 통계청이 조사통계국에서 외청으로 승격한 것은 1990년이다. 여전히 기재부의 통제를 받는다.
윤석열 정부가 전 정권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통계청의 독립 문제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국무총리 산하에 두는 방안을 검토했다지만 실행되지 못했다.
최선의 선택은 독립기구다. 국가통계위원회 위원장이 기재부 장관인 구조로는 독립성 보장은 '머나먼 쏭바강'만큼이나 요원하다. 그보다 먼저 말 잘 들을 청장을 고를 생각이 행여 있다면 당장 버리기 바란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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