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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급망 탈세계화? 무게중심 이동일 뿐"

WSJ, 세계화 역전의 실상 지적
배터리 아시아 생산 의존도 낮춰
호주·칠레·캐나다 등 의존 높아져

미국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을 아시아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에서 생산하기 위한 공급망 마련에 나서면서 본격화하고 있는 세계화 역전(후퇴)은 실상 무게중심 이동에 불과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적했다.

WSJ은 지난 12월 31일(현지시간) 탈세계화(Deglobalization)가 새로운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평가했다. 세계화가 되감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탈세계화의 대표적인 징후로 간주되고 있는 교역 위축이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전세계 교역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을 틀어 잠그는 등 러시아의 유럽 상품 수출이 급감했고, 중국은 제로코로나 정책에 따른 봉쇄로 세계 공급망 차질을 불렀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미국 생산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 지급에 나섰다. 애플은 중국 정저우가 코로나19로 봉쇄되면서 아이폰 생산이 심각한 차질을 빚자 인도와 베트남 등으로 생산을 다변화하기 위한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탈세계화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계획은 아시아 배터리 업체들에 대한 생산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호주, 칠레, 캐나다 같은 배터리 핵심 원자재 생산 국가들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역시 성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탈세계화를 외치며 중국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겼지만 이로 인해 미국 내 일자리가 크게 늘고, 생산활동에 활기가 돌지는 않았다. 대신 미국의 수입이 중국 대신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수입 감소 효과는 미미했다.

지난해 전세계인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도 탈세계화가 정치인들의 구호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탈세계화로 생산 비용이 오르고, 이에따라 물가가 뛰면 소비자이자 유권자인 일반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유권자 눈치를 봐야 하는 정치인들이 탈세계화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기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미국은 중국과 갈등 속에 탈세계화 대신 공급망 재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보다 인건비가 싼 멕시코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미국의 멕시코 수입 규모는 지난해 10월 현재 팬데믹 이전에 비해 약 60% 폭증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