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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것인가, 뭉칠 것인가... '보호무역 시대' 韓의 결심은 [2023 신년기획]

지정학의 귀환 온쇼어링 온다
우크라 전쟁 이후 공급망 붕괴
자국으로 공장 옮기는 움직임
인접국·동맹국과는 협력 확대
세계화 종식 아닌 재편성 전망

세계화는 최근 수십년간 글로벌 경제 전반을 관통했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후 이어져 온 세계화·글로벌화 추세는 지난 한 해 지정학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큰 지각변동을 겪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에 따른 에너지와 곡물 가격 급등은 근래엔 볼 수 없었던 심각한 물가상승(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서방 국가로부터 제재를 받기 시작한 러시아는 사실상 석유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면서 풍족했던 세계는 불안한 겨울 속에 새해를 맞았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가 한층 블록화되면서 위기감에 휩싸였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해 연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세계화가 위기를 맞고 시장이 쪼개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미 모든 나라는 누군가와 헤어진다고 생각하는 '헤어질 결심'을 했다"고 언급했다.

■위기 맞은 세계화

되돌아보면 세계화로 재화와 용역비용은 더 저렴해졌으며 일부 국가들은 개도국 지위에서 벗어나 신흥국이 되면서 세계 인구 중 약 10억명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세계화는 큰 위기를 맞기 시작해 재조정 또는 붕괴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세계화는 근로자들을 착취하고 불평등을 심화시켰으며 대량실업 같은 부작용을 유발한 것으로 지적됐다. 국제기관과 엘리트 지배층,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커지고 오프쇼어링(생산시설의 해외이전)과 자동화로 인해 정부가 노동자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확산됐다. 세계화가 부유한 국가와 빈곤국가의 격차를 좁히는 데 기여하기도 했지만 서방국가 내부에 불평등 문제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경쟁국이나 비협조적인 국가를 버리고 그 대신 동맹국과 경제협력을 더 늘리는 추세가 늘고 있다.

■프렌드쇼어링 증가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90%가 3년 내 공급망을 인접한 지역에 둘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정치적 리스크가 적은 동맹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프렌드쇼어링'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이것은 세계화 대신 지역주의를 부추길 것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의 보고서도 정부와 기업들이 공급망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자국 또는 가까운 지역에서의 제조를 늘릴 것으로 전망했다.

WEF는 앞으로 기업들이 보다 더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경제를 통합해 재화와 용역, 재무, 데이터, 사람의 이동을 다시 조정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기업인은 세계가 재글로벌화 시대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수쿨 교수 지크 허낸데즈는 한 인터뷰에서 단기적 차질이 있겠지만 국제무역 펀더멘털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는 두 국가 간 전쟁 이상의 충격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글로벌화가 중기적으로 완전히 없어지지는 못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허낸데즈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주요 사태 때마다 글로벌화의 종말론이 제기된 것에 대해 일시적인 경제활동 감소 같은 것은 항상 있었다며 "단기적 차질과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잘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다국적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한 후 대신 다른 곳으로 옮겨 기업활동을 하는 경우에서 보듯이 더 큰 규모의 전쟁이 없는 한 글로벌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허낸데즈는 전망했다.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퇴조하고 자국 우선의 보호무역과 블록화가 득세하는 시대에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다. 최 회장의 '헤어질 결심'은 블록화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전방위 대처 필요성, 법인세 추가 인하 등을 통한 기업 투자활력 제고,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 대한 지원 강화가 시급함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