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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자료 즉시 삭제하라" 서욱, 박지원 피격 이튿날 '밤샘 작전' 폈다

"서해 자료 즉시 삭제하라" 서욱, 박지원 피격 이튿날 '밤샘 작전' 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왼쪽),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에서 피살된 이튿날,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직원들에게 관련 자료를 즉시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수천 여건의 첩보와 보고서 등이 삭제됐다.

12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서 전 장관과 박 전 원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씨가 북한군에 살해된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새벽 1시경 제1차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열었다. 국가안보실은 참석자들에게 "피격 및 시신 소각 사실에 관해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위 사실이 일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서 전 장관은 회의 종료 직후 합참 작전본부 작전부장에 전화를 걸어 “강도 높은 작전보안을 유지해야 한다"며 "자료가 외부로 일체 유출돼서는 안 되니 관련 자료를 모두 수거해 파기하고,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인원 전원을 상대로 보안교육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군 첩보 담당 18개 부대의 이씨 사건 첩보 보고서 5417건,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에 등재된 첩보 보고서 60건, 해병 예하 부대의 원음 첩보 파일 등 60여 건이 삭제됐다고 검찰은 공소장에 적시했다.

검찰은 서 전 장관이 몇 시간 남지 않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UN 화상 연설에 대한 비판 방지 등을 이유로 이 같은 지시를 한 것으로 파악했다.

서 전 장관 측은 그간 "첩보나 보고서의 원본을 삭제한 것이 아니라 보안 유지를 위해 배포선을 조정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검찰은 첩보 원음 파일을 비롯한 문서 대부분이 삭제되거나 손상됐다고 판단했다.

같은 시기 국정원에서도 이씨 사건 관련 첩보 및 자료들의 광범위한 삭제가 이뤄졌다. 박지원 전 원장은 서 전 장관과 함께 새벽 안보 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노은채 당시 비서실장에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했다.

이에 노 전 실장은 23일 오전 9시 30분께 국정원 차장 및 기조실장을 소집해 '원장님 지시사항'을 전달하며 "첩보 관련 자료를 모두 회수해 삭제조치를 하고,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에서는 이씨 사건 관련 키워드가 포함된 첩보와 이를 분석한 보고서 등 55건이 삭제됐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박 전 원장은 지난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삭제를 지시했다는 혐의에 대해 “제가 첩보를 삭제해도 첩보 원본이 국정원과 국방부 서버에 남는다. 그런 바보짓을 하겠느냐”라고 반박한 바 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