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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북한 주민 손에 USB 쥐여줘야

[구본영 칼럼] 북한 주민 손에 USB 쥐여줘야
새해 들어 북한이 핵 위협 수위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정초부터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초대형 방사포를 쏘아 올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도 건너뛰었다. 그 대신 "남조선은 명백한 적"이라며 "전술핵무기를 다량 생산하고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는 호전적 대남 메시지만 내놨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불량국가로 낙인 찍힌 진 오래다. 지난 연말에 무인기를 내려보내 서울 상공을 휘저었다. 정초엔 김정은이 어린 딸을 데리고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 공장을 둘러보는 광경을 공개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세습체제의 영속성을 과시할 요량이었을 법하다. 대량살상무기 개발 현장에서 당 고위간부들이 손녀뻘 김주애에게 90도로 '폴더 인사'를 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다.

고위급 탈북자인 태영호 의원(국민의힘)은 "김정은 남매가 국가자산 배분에서 이성을 잃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올해 전 주민이 46일간 먹을 쌀을 구매할 수 있는 비용을 지난해 각종 미사일 70여발을 발사하는 데 허비했다는, 정부 분석 그대로다. 역설적으로 세습정권의 절망감을 반영하는 이 같은 행보로 인한 피해자는 북한의 보통사람들이다. 지난달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한파와 식량난으로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북한 주민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주민 삶보다 정권 안위를 최우선시한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주민들이 남녘의 자유와 풍요를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3대 세습정권의 DNA는 남북 관계의 본질적 진전을 가로막는 근본요인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북한 정권의 속성에 철저히 눈감았다. 그래서 북 주민을 후순위에 둔 채 정상회담 등 평화 이벤트에 매달렸다. 김정은의 핵 포기 의사가 전무함이 백일하에 드러날 때까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전임자 그 누구보다 '북한 정권 퍼스트' 정책에 진심이었다. 유엔 북핵제재 국면에서 열린 2018년 4·27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에게 신경제 구상을 담았다는 USB(휴대용 정보저장장치)를 건넬 정도로. 그런데도 결국 '삶은 소대가리'니 '특등 머저리'니 하는 막말을 들었다. 북한 정권이 원하는 현찰이 아니라 북한 체제의 개방을 수반하게 되는 경제지원 방안을 들이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김정은은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거부반응을 보였다. 누이인 김여정이 "(남측이) 또 무슨 요란한 구상을 해가지고 문을 두드리겠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한 남쪽의 지원도 체제 유지에 독이 된다는 세습독재체제의 딜레마가 적나라하게 읽힌다.

북한 정권의 고질인 '개혁·개방 공포증'이 쉬이 사라질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도 이참에 북한 체제 전환을 염두에 두고 '담대한 구상 2.0'을 준비해야 한다.
즉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서도록 기회의 창은 열어 놓되 북한 주민을 겨냥한 플랜B도 가동해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 내부로 충분한 외부정보를 주입하는 대안이 필수란 뜻이다. 이제는 김정은이 아니라 북 주민들의 손에 바깥세상의 진실을 가득 담은 USB를 쥐여줘야 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