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매서운 새벽의 8146번, 버스 안은 '삶의 열기'로 뜨거웠다 [현장르포]

3시 50분 첫차부터 '만원'
상계동∼신논현역 운행
승객 대부분 미화 노동자
"운행 차량 횟수 더 늘려야"

매서운 새벽의 8146번, 버스 안은 '삶의 열기'로 뜨거웠다 [현장르포]
지난 18일 오전 5시13분께 서울 노원구 상계동부터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까지 운행하는 8146번 버스 첫차가 승객이 꽉 찬 상태로 운행되고 있다. 사진=노유정 기자
"아무리 추워도 버스 안은 너무 더워서 겉옷을 벗어야 돼요."

18일 오전 5시 8146번 버스 안. 이모씨(67)가 이마와 콧잔등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사람들 틈에 끼어 겨우 외투를 벗어 들고 있었다. 이날 서울 기온은 영하 4도 밑으로 떨어졌지만 콩나물 시루가 된 버스 안은 찜통 같았다. 지난 16일부터 운행중인 8146번 버스는 오전 3시 50분부터 서울 노원구 상계동 7단지 영업소에서 출발해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까지 운행한다. 새벽 일찍 강남구 빌딩에서 사무직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청소를 마쳐야 하는 미화 노동자 등이 주로 이용한다.

당초보다 첫차 출발 시간을 15분 앞당긴 노선이지만 사람이 몰려 이날 10분가량 운행이 늦었다. 시민들은 "오늘도 늦었어", "어떻게 146번보다 더 못 가", "그만 태워요"라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운행 차량 횟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15분 빨라졌지만 여전히 '만원'

8146번 버스는 지난 2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새해 행사로 146번 버스에 탑승하면서 첫차 시간을 앞당겨 달라는 시민들의 요청을 듣고 신설했다.

이날 8146번 버스는 출발한 지 30분 만에 좌석이 다 찼다. 약 50분 뒤인 4시43분 중랑구 국민은행 중화동지점을 지날 때쯤에는 선 사람들도 빼곡한 만차 상태가 됐다. 사람이 너무 많아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기도 했다. 사람들은 차량이 방향을 틀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내며 인파에 떠밀렸다. 인파가 엉켜 매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5년간 146번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는 문모씨(67)는 "이왕 도와주려면 30분만 더 일찍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씨는 "원래 146번 버스처럼 버스 세 대가 한꺼번에 출발하면 좋을 것 같다"며 "다들 첫차를 타고 싶어해서 늦어진다"고 전했다. 당초 146번 버스는 오전 4시5분에 3대가 한번에 출발하고 4시 8분까지 1분 간격으로 1대씩, 이후 2분에 1대씩 운행한다. 그러나 8146번 버스는 3시 50분부터 5분 간격으로 1대씩 4시 5분까지 총 3대가 순차적으로 운영된다.

■60대 미화원들 "나이 들면 다른 일자린 못구해"

버스에 탄 승객 약 80%는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주를 이뤘다. 기자가 대화해본 7명의 승객은 모두 청소 노동자였다. 미어 터지는 만원 버스지만 이들은 다른 교통편에 대한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60대 A씨는 "상계 쪽에는 일이 없는데 강남 쪽에는 일자리가 많으니까 사람들이 다 이 버스를 탄다"며 "나이 드니까 다른 곳에 취업할 수가 없다. 학벌이 좋아도 60대면 일자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수락산 정거장에서 탑승한 양모씨(68)는 10년 넘게 선릉역 인근 빌딩에서 청소를 했다. 그는 오전 7시30분까지 2개 층을 혼자 치워야 한다.
양씨는 "오전 6시까지 출근하라고는 하는데 그때 가면 직원들이 나올 때까지 일을 못 끝내니까 5시까지 가야 한다"며 "심야 버스를 타려 해도 노원까지 나와야 하니까 타고 싶어도 못 탄다"고 한숨을 쉬었다.

오모씨(60)는 "매일 버스 운행시간이 5~6분 차이 나는데 그것도 크다"며 "운전을 천천히 하면 조마조마해진다"고 불안감을 나타냈다. 오전 5시18분께 삼성역에서 내린 노동자들은 검푸른 어둠을 헤치고 일터로 뛰어갔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