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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발사한 한국, 핵무장 기반 다졌다? 삑, 틀렸습니다 [fn팩트체크]

누리호 발사 기술, ICBM과 유사하다는 논란

누리호 발사한 한국, 핵무장 기반 다졌다? 삑, 틀렸습니다 [fn팩트체크]
국내 기술로 제작된 한국형 최초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해 6월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누리호 발사한 한국, 핵무장 기반 다졌다? 삑, 틀렸습니다 [fn팩트체크]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지난해 12월 국방과학연구소 종합시험장 인근 해상에서 우리 기술로 개발한 고체추진 우주발사체의 성능 검증을 위한 두 번째 비행시험에 성공했다. 국방부 제공

최근 자체 핵무장론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면서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에 적용된 기술을 군사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누리호를 ICBM으로 사용하기엔 아직 여러가지 단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30일 우리 군이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시험에 성공하면서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그 발단은 영국 공영방송사인 BBC의 보도에서 시작됐다. BBC는 2021년 10월 누리호 첫 발사 당시 "한국은 위성을 발사하기 위해 누리호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하지만, 이 시험은 한국이 진행 중인 무기 개발의 일환으로 여겨져 왔으며, 탄도 미사일과 우주 로켓은 유사한 기술을 사용한다"고 보도했다. AP통신도 "북한과의 적대감 속에 한국이 우주기반 감시 체계와 더 큰 규모의 미사일을 구축할 핵심 기술을 보유했음을 입증했다"고 언급했다. 이에 누리호 발사 기술이 ICBM 발사 기술과 유사한지, 또한 실제로 누리호를 이용해 ICBM를 발사할 수 있는지를 따져봤다.

■ 로켓 엔진과 단분리 기술 같은데?... 누리호는 대기권 재진입 고열 못견뎌

24일 각계 전문가에 따르면 누리호와 같은 우주발사체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MB)은 로켓 엔진과 단 분리 등 기반기술이 매우 유사하다. 해외 언론들이 이 점을 두고 무기개발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발사체와 ICBM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기권 재진입 여부다. 누리호는 수직에 가깝게 하늘로 치솟아 인공위성이 올려질 궤도에서 수평에 가깝게 가속 비행하면서 위성을 분리하고 임무를 마친다. 반면 ICMB은 대기권 밖으로 나가 최고 고도에선 엔진을 정지한 뒤 포물선 형태의 궤도를 그리며 지상의 타격 목표지점을 향해 떨어진다.

ICBM이나 우주발사체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경우 고온과 고압을 견뎌야 한다. 저밀도 공기층에서 감속한 후 고밀도 공기층으로 자유낙하하므로 초속 9㎞ 이상의 속도로 공기와 부딪치면서 최대 2000~6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된다. 하지만 ICBM과 달리 누리호는 대기권 안으로 들어올 때 마찰에 의한 고열을 견디지 못한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지상에서 발사된 ICBM이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진입할 때 발생하는 고열과 충격으로부터 탄두를 보호하고, 탄두의 폭발을 막아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와 관련, 예비역 육군 중령인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들은 아직 우리 군에서도 시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 누리호는 액체연료, ICBM은 고체... 연료주입만 4시간, 은밀한 발사 불가

전문가들은 또 누리호와 ICBM의 엔진 차이를 지적하고 있다. ICBM은 대부분 고체연료가 쓰이지만 누리호는 액체연료를 사용한다.

액체연료 엔진은 연료와 산화제가 부식성이 강한 맹독성 물질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로켓에 오랜 시간 넣어 보관할 수 없고, 발사 직전에 연료를 주입해야 한다. 연료주입 시간은 짧게는 수십분, 길게는 몇 시간이 걸린다. 반대로 고체연료 추진방식은 몇 분이면 발사준비가 끝나기 때문이다. 누리호 발사 과정에서도 발사 하루 전 발사대에 세우는 작업을 하고, 4시간 가까이 액체연료를 주입하는 등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신종우 사무국장은 "미사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이 모르게 신속하고 은밀하게 쏴야 하는데 연료주입 과정에서 적에게 노출된다"고 말했다.

■ 러시아 ICBM도 고체연료 쓰는데?... 미리 충전 가능한 저장성 액체추진제

우주발사체 모델 중 최장수 모델은 러시아의 소유스 시리즈다.

이 발사체의 엔진은 NK-33과 RD-0110으로 케로신(등유)을 연료로 사용하고 액체산소를 산화제로 사용한다. 누리호의 엔진도 같은 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 시리즈는 멀린 엔진이 장착돼 있으며, 이 또한 케로신과 액체산소를 사용한다. 또 중국이 개발한 우주발사체 '창정' 시리즈에 들어가는 엔진은 적열질산과 히드라진을 사용하며, 최근 개발한 엔진에는 케로신과 액체산소 또는 액체수소와 액체산소가 들어간다.

이들 엔진에는 연료를 잘 연소시키기 위한 산화제로 액체산소가 많이 쓰이는데, 이를 발사체에 저장하려면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반면 ICBM의 엔진은 고체연료를 주로 사용한다. 미국과 러시아(구소련)는 초창기 우주발사체와 같은 엔진을 사용했다. 미국이 1954년 개발했던 아틀라스나 러시아의 소유스가 대표적이다. 당시 군 관계자들은 저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고체연료 엔진으로 개발 방향을 바꿨다.

러시아의 ICBM은 액체연료를 사용하지만 누리호와 조금 다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최환석 발사체연구소장은 "러시아의 ICBM은 상온에서 충전해 놓을 수 있는 저장성 액체 추진제를 사용하지만, 누리호는 발사 전 계속해서 산소와 액체 추진제를 주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그럼 우리도 개발하면 되지?... 굳이 수년간 수천억 투자할 이유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군이 시험에 성공한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로 인해 ICBM과 누리호가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불거지고 있다. 고체연료 엔진을 누리호에 장착하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탄도미사일을 이미 개발해 ICBM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장거리미사일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정된 인력과 재원을 ICBM 개발에 투자하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대기권 재진입 시 견딜 수 있는 각종 소재를 개발하는 데도 수년간 수천억원을 투자해야 하는 등 걸림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신종우 사무국장은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고폭탄을 탑재해 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군에서는 중거리급 이상으로 날려보낼 이유가 없다"면서 "탄두 중량을 높여 고위력 탄두로 북한에 대비할 수 있는 현무5 등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세계 각국과 주변 열강들이 주목하는 상황에서 누리호를 ICBM으로 개발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는 주장이다.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이창진 교수는 "누리호를 개발하는 데 내세운 명분이나 방향은 평화적 우주개발을 위해 만든 것이지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